[화제 논문 '포스트모더니즘과 메타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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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직위원회에 속속 도착하고 있는 발제문 중 최근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등 역작(力作)을 통해 역사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김기봉(경기대) 교수의 글이 우선 눈에 띈다. 김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메타역사- '후삼국' 시대의 역사를 중심으로」를 발표한다.

이 발제문에서 김교수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는 실증주의를 천착한 근대 역사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에서 후삼국 시대 '새로 읽기' 를 시도한다.

그는 이 분야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 즉 김갑동의 『태조 왕건』, 이도학의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 이재범의 『슬픈 궁예』를 텍스트로 삼아 그것이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서술됐으며 그 장.단점은 무엇인가를 짚었다.

김교수는 미국의 역사이론가인 헤이든 화이트의 '역사 이야기' (이야기의 플롯은 배제.종속.강조의 과정을 거치며 이런 패러다임을 결정하는 것이 '메타역사' 다) 구성방식을 차용해 로망스.희극.비극.풍자로 구분하고 앞서 언급한 세권의 책을 여기에 대입해 설명한다.

김교수에 따르면 『태조 왕건』은 로망스의 플롯을 갖춘 역사 이야기다. 로망스는 경험의 세계를 초월한 주인공의 영웅적인 행동과 그 승리의 드라마로, 이 책은 '후삼국' 최후의 승자인 왕건에 초점을 맞춰 이런 식으로 역사를 기술했다.

그러나 이 책이 당시에 이미 역사가들에 의해 '구성된' 텍스트인 『삼국사기』와 『고려사』를 자료로 택해 실증사학의 한계를 노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교수는 희극적 플롯의 역사 이야기로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를 꼽았다. 이 책은 진훤(견훤)을 시대의 영웅으로 그리며 김부식 이래로 지금까지 지배권력의 헤게모니를 옹호하는 데 기여한 '중앙서사' 에 대항하는 '가능성의 역사' 를 부각한다고 평가했다.

한편 『슬픈 궁예』는 궁예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세계의 꿈이 좌절되는 과정을 운명적으로 재현한 비극적 플롯의 역사 이야기로 분류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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