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희중 '사냥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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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벌레의 집으로 옷을 짓고

꽃으로 베를 짜며 짐승의 살갗을 뺏어 입는다

식물의 시체 썩은 검은 물을 태워 수레를 굴리고

돌을 녹여 생각 없는 무서운 짐승과

그의 이빨을 만든다 흙을 박제한 후

의자에 의지하고 제 비린내를 강물에 씻어

세상을 더럽힌다 그리고 직설적으로

더 상징적으로 동족을 사냥한다

- 이희중(1960~ )의 '사냥꾼'

인간은 지상 최고의 보기 드문 약탈자다. 그는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뭇 생명들로부터 끝없이 신세를 지고 산다.

그 착취와 파괴의 역사를 교묘하게 문화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말이다. 돌이나 물과 같은 자연의 재산이 인간에 의해 함부로 쓰여지고 더럽혀지는 것을 시인은 참담하게 바라본다.

게다가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전쟁, 그것을 시인은 동족 사냥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한다. 때로는 드러내놓고, 때로는 교묘하게, 사냥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우리 중에 사냥꾼 아닌 자 있거든 이 시에 돌을 던져도 좋다.

안도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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