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같이 살아가는 '만학 어머니'들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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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일은 어버이 날. 어머니면 대개 집안 살림을 하고 자식을 키우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는 데는 관심을 두지 못한다. 가정에 소홀하지 않으면서 늦게나마 새로운 삶에 도전, 억척같이 살아가는 '만학 어머니' 세명을 소개한다.

*** 교복입은 '왕언니' 김문자씨

“ 광주 K여고 1학년3반 김문자 학생은 나이가 41살로 담임 교사보다 다섯살이 더 많다.

초등학교까지 밖에 다니지 못한 김씨는 "더 늦기 전에 배우자" 며 1996년 살림하는 틈틈이 공부해 3년여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고교 과정도 검정고시로 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지난 2월 딸(국민대 건축학과 1년)이 졸업한 이 학교에 딸의 후배로 그 다음달 입학했다. 학창시절을 직접 경험해보려는 뜻에서였다.

학교 뒷편 아파트에 사는 '엄마 학생' 은 사복으로 등.하교해 학교에서 교복을 갈아입는 것을 빼곤 딸 같은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운동장의 체육수업이나 청소도 열외 대우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학생보다 더 열심히 한다.

회사원인 남편과 고교 2학년의 아들이 있는데도 "대학에 꼭 가겠다" 며 야간 자율학습에도 참여해 오후 9시30분까지 교실에 남아 공부한다.

"왕언니" 라고 부르며 따르는 급우들을 친구.언니.어머니같이 이끌어 이 반을 매사에 모범적인 반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장학금 지급 등 교육청이 혜택를 제공하려 해도 본인이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 주길 바래 굳이 거절했다" 며 "학교측에서는 면학 분위기 등을 고려해 김씨의 언론 취재를 꺼린다" 고 말했다.

김씨도 학교생활에 적응할 때까지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며 취재를 사양하고 있다.

이해석 기자

*** 대불대 회화가 이윤정씨

*** 대불대 회화가 이윤정씨

“ 지난 4일 전남도 미술대전에서 서양화 부문 대상을 탄 이윤정(52.목포시 호남동.사진)씨는 스스로 "목숨을 걸고 산다" 고 말할 정도로 치열한 인생을 엮어가고 있다.

그녀는 1968년 목포여고를 졸업한 지 32년인 지난해 대불대 회화과에 입학한 대학 2학년생이기도 하다.

자식들을 다 키우고 나니 별다른 할 일이 없어 낭만을 찾아 대학에 가 젊은이들 틈에 끼어 캠퍼스생활을 즐기며 그림을 그리는 것쯤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큰 딸(30)은 출가하고 둘째딸(28)과 아들(27)이 각각 성우 수업과 대학원 준비를 하느라 따로 살지만 남편(석동중.60.임상병리사) 외에 두 어른과 함께 살고 있다.

올해 88살의 시어머니와 건강치 못해 혼자는 못 사는 61살의 시누이를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 수업 후 집에 가 저녁식사를 챙겨준 뒤 다시 20~30분을 운전해 학교의 화실로 와 새벽 2~3시까지 작업하다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림도 결혼 후 줄곧 두 시어른을 모시고 살림살이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 그려왔다.

이씨는 "세상과 문을 닫고 살림만 하며 촌음을 아껴 그림을 그려 왔다" 며 "그림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자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는데, 살림하랴 수업받으랴 그림그리랴 하루하루가 정신없다" 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토목 자격증 셋 딴 천성희씨

“ 광주 상무지구 중흥아파트에 사는 46살의 천성희 주부에게는 억척스럽다는 말보다는 독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녀는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뛰어다니다시피하며 집을 정리한 뒤 근처의 독서실로 달려간다. 이런 식으로 살림을 하고 새벽 예배도 매일 다니면서 하루 8시간을 책과 씨름한다. 목표는 기술분야 최고의 '기술사' 자격증을 따는 것.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나오고 결혼 후에 미용실.떡방앗간 등을 하며 가난과 싸우던 그녀는 41살 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한밤중까지 책을 보다 막히는 게 나오면 자는 딸을 깨워 물어볼 만큼 열심이었고 3년 만에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1999년 송원대 토목과에 입학, 아들.딸 같은 학생들 사이에 섞여 늦깎이 캠퍼스생활을 하면서 토목 기사를 비롯한 3개 기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지난 2월 대학 졸업 후엔 역시 뒤늦게 공부해 같은 과 후배가 된 남편(전천관.48.건설업)과 두 대학생 딸.고교 3년짜리 아들을 보살피며 자기 인생에 또한번 도전하고 있다.

천씨는 "기술사 시험 3년 내 합격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아내.어머니 노릇을 다 하면서 공부하자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체력이 달려서도 욕심껏 책을 볼 수 없어 속이 탄다" 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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