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융상품 관련규제 완화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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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가 금융상품 관련 규제를 풀려는 것은 금융상품이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 평가받아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뜻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이 이뤄졌지만 지금까진 부실채권을 줄여 재무구조를 다지고 사람을 줄여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 시장 상황이 바뀐 만큼 금융구조조정도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 금융상품 규제 왜 푸나=정부는 1980년대 초반 1차 외환위기를 겪은 멕시코 등 남미 국가들이 90년대 초 다시 어려움을 겪은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이 자생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상품을 자유롭게 만들어 시장에서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외국 정부와 주한 미상공회의소 등에서 금융상품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요청이 있었다" 며 "재무구조 개선과 인력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므로 이제 다양한 상품 개발을 통해 금융기관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고 강조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시중자금이 단기 부동화하는 최근 시장 상황도 다양한 상품 개발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연구위원은 "금융상품에 대한 규제가 상당 부분 풀렸지만 아직도 관행에 묶여 자율적인 상품 개발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다" 며 "금융상품에 대한 당국의 인가가 '이것만 된다' 는 식의 포지티브 시스템이어서 금융기관들은 정부가 명시적으로 된다고 한 상품 외에는 개발하려 들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

◇ 금융업계의 불만=최근 모 손해보험사에서 죽을 때까지 각종 사고.질병 등을 보장하는 순수 보장형 상품을 계획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에서 손해보험사에 만기가 없는 상품을 허용할 수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영역이 흔들린다는 이유였다. 이 바람에 이 상품은 80세까지만 보장하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금융계에선 상품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거의 없어졌지만 모호한 규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다른 업종과 조금이라도 겹치거나 성격이 불투명한 상품에 대해서는 제동을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 은행 자체 문제도 있어=미국 최대 증권사 메릴린치는 은행.증권의 영역 구분이 뚜렷한 상황에서도 어음관리계좌(CMA)란 신상품을 개발해 금융혁명을 주도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그동안 감독당국의 규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핑계로 금융계도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은행의 한 임원은 "신상품 개발이 활발하지 못한 것은 규제보다도 오히려 은행권의 단편적인 상품개발과 베끼기 경쟁 때문" 이라고 말했다.

송상훈.서경호.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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