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엔인권위 이사국 탈락 파장 계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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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인권 선진국' 을 자부하던 미국이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 자격을 상실한 사건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분석한 미국은 동맹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미국을 '왕따' 시킨 것이라는 사실에 충격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있으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중국 등은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지난 3일 결정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여 미국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 미국내 논란 확산=충격을 받은 미국에서는 강경론과 자성론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1993~96년 인권위 미국 대표를 역임한 제럴딘 페라로 여사는 "엘리너 여사(인권위 발족에 기여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부인)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날 일" 이라고 충격을 묘사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일로 미국이 유엔에 보복하기보다는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자성론' 을 폈다.

신문은 '유엔에서의 반란' 이란 5일자 사설에서 "미국이 유엔을 무지하고 귀찮은 의붓자식으로 취급해온 경향을 비롯해 ▶유엔 분담금 연체▶교토기후변화협약 철회▶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파기 시도 등이 유엔 회원국들을 자극한 것" 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내에는 자성론보다 기존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는 분위기다.

파월 국무장관은 "우리는 인권보고서를 계속 발간할 것이며 인권을 탄압하는 나라들에 해명을 요구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의회내에서도 미국에 반대투표를 한 나라들에 대해 원조를 중단하자는 강경론이 나오고 있다.

◇ 국제사회 반응=유엔은 미국의 인권위 탈락이 자칫 유엔의 영향력 약화는 물론 미국내 강경 여론을 자극해 미국의 분담금 납부 지연과 감축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탈락 이후 "미국이 인권분야에서 계속 활동해 주길 강력히 희망한다" 고 말했다.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위 판무관은 6일 "미국이 기여할 부분이 아직 많다" 면서 "(올해말 의석을 상실하는)미국이 조속히 복귀하길 바란다" 고 밝혔다.

러시아 네자비시마야가제타지는 5일 "초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공격적인 외교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여준 것" 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인 차이나데일리는 "미국의 이사국 탈락은 인권을 가장해 편견을 가지고 다른 나라를 비난해온 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 라고 비난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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