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영화] KBS2 '내 마음의 풍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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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내 마음의 풍금 (KBS2 밤 10시30분)=아련한 추억을 기분 좋게 간질이는 영화다. 삶은 계란이나 검정 고무신, 가을 운동회 같은 복고풍 소재가 연거푸 등장해 옛 기억을 건드리고 앳된 소녀의 짝사랑은 감정이입을 은근히 부추긴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뜨거웠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보다 아기자기하고 따뜻해 어린이날 온 가족이 보기에 좋다.

60년대 강원도 산골 학교에 스물 한살 총각 선생 수하(이병헌)가 부임해 온다. 편모 슬하의 열 일곱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전도연)은 그와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짝사랑하게 되지만 아쉽게도 수하는 연상의 동료교사 은희(이미연)를 사랑한다. 이처럼 이야기는 삼각관계로 출발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사랑에만 연연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때론 동네 사람들을 유심히 비추는가 하면 향수 어린 기억들을 건드리는 데 소홀함이 없다.

이영재 감독은 꼼꼼한 소품과 세트로 지나간 것들을 세세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고 영상도 넉넉하고 아름답다. 이감독의 데뷔작이다.

주연들의 연기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짝사랑의 열병을 앓는 능청스런 소녀 전도연과 수줍음 많은 총각 선생 이병헌은 이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부쩍 성장했다. 이미연 역시 깔끔한 이미지로 제 역할을 다 한다.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 를 각색했다. 99년작.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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