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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보호법안 타협에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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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비정규 고용 관련 법안에 대해 노동계와 사용자 측 모두 불만을 나타내고 있어 노사.노정 간 최대 현안으로 등장했다. 비정규 관련 법안은 새로 만들어진 '기간제 및 단기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 고용 법안은 이전에 없었던 규제를 신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 중심의 입법이다. 주요 내용은 차별 금지 및 차별 구제, 반복 갱신 규제, 그리고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과다한 초과근로의 규제 등이다. 여기에서의 쟁점은 남용에 대한 규제 방식이다.

비정규 고용은 임시 고용의 필요성 때문에 허용되는 만큼 임시성을 벗어나는 비정규 고용은 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 보호는 임시성에서의 이탈을 규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용의 임시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사용 사유, 사용 직무, 그리고 사용 기간의 세 가지다. 이와 관련, 노동계는 기간제를 사용하는 사유를 직접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유와 직무라는 기준은 자의적으로 판단될 여지가 많아 노사 간 힘의 추가 흔들릴 때마다 과보호와 남용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다. 반면 사용 기간은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단기간 근로자를 보호할 수 있는 현실적 규제 수단으로서는 사용 기간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사용 기간이 보호와 활용을 조화시킬 수 있는 기준일까. 2003년 현재 비정규 근로의 계약기간 통계를 살펴보면 임시 근로계약의 약 63%가 1년 미만, 13%가 1~2년, 6%가 2~3년, 그리고 3년 이상은 약 18%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허용기간을 1년으로 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이고, 현재 단기근로계약의 약 80% 정도를 포괄하는 2~3년이 균형점이 될 수 있다. 다만 2~3년의 기간 중 어느 기간이 최적일지는 사전적으로 알 수 없으므로 법 시행 후 그 효과를 관찰해 추후에 조정하면 될 것이다. 또 이 기간은 비정규 고용법제의 일관성 유지를 위해 파견근로법에서 허용하는 최대 파견기간과 동일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 측이 지나친 규제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쟁점은 차별금지 조항이다. 비정규 고용 자체가 시장의 선택 결과이기 때문에 고용 형태를 전제로 한 차별대우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우리나라 임금체계가 대부분 연공급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호소력을 갖는다. 임금체계가 직무 중심으로 돼 있다면 고용형태가 다르더라도 동일직무에 대한 임금이 다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연공제 임금체계 아래서는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임금에 비해 낮아지게 돼 차별대우로 보이게 된다. 즉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이라는 게 사용자 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현실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차별대우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는 없다. 정규직 과보호 문제와 연공형 임금체계 문제는 그 자체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향후 비정규직 보호 강화는 필연적으로 정규직 과보호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것인 바, 정규직 과보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는 전략을 오히려 경영계에 제안하고 싶다.

파견근로법 개정은 기존의 규제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파견 대상 업무 확대, 불법 파견 규제 강화, 파견 기간의 3년 연장 및 휴지기간 설정이다. 노동계는 파견 대상 업무 확대는 개악이라는 입장이다. 이 부분이 사실상 비정규 관련 법안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현행 파견근로 역시 '임시성'을 전제로 하되 중간착취의 가능성을 고려해 다른 비정규 고용형태보다 강력한 규제 장치를 두고 있다. 대상 업무 제한은 이러한 규제장치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파견업무 제한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중간착취 가능성을 어느 업무에서는 허용하고, 어느 업무에서는 허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대상 업무 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근로조건이 더욱 열악한 위장 도급 등이 만연하고 있는 바, 오히려 이를 파견근로라는 합법적 틀로 규제하는 것이 해당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파견근로의 활성화가 현 상황에서 비정규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노동계에 호소하고 싶다. 중간착취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른 강력한 규제수단(휴지기간의 설정, 근로조건 서면고지 의무화, 불법 파견시 직접고용의무 등)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파견근로에 대한 이 같은 재정비는 국제 기준과도 부합된다고 판단된다.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