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5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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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월을 찬미한 여러 시인 가운데 독일 시인 하이네처럼 간결하고 깔끔하게 5월의 정취를 노래한 시인도 없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모든 꽃봉오리가 터질 때/나의 마음 속에도/사랑이 싹텄네/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모든 새들 노래할 때/그녀에게 고백했네/나의 동경과 희망을'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의 첫번째 곡으로도 유명한 이 시는 5월처럼 풋풋한 청춘의 사랑을 군더더기 없이 그리고 있다.

여기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란 표현은 독일어의 '분더쇤' 을 번역한 것인데 딱 떨어지는 우리말 표현은 찾기 힘들다.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쯤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밋밋하다.

하이네를 유달리 좋아해 정작 독일인들은 잘 모르는 로렐라이를 관광명소로 만들어 버린 일본인들도 이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등으로 번역한다. 영어권에선 'wonderfully beautiful' 이라고 번역하지만 역시 '분더쇤' 의 제맛이 안난다. 어쨌든 이 단어 하나로 하이네는 5월이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 노래했다. 꽃.향기.새소리.사랑.젊음.희망.생명….

하이네의 시가 아니더라도 독일의 5월은 참 아름답다. 자살하려던 사람이 5월엔 자살을 연기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4월이 유난히 '잔인했던' 올해는 특히 그렇다. 4월 말까지 눈이 내릴 정도로 궂은 날이 계속되더니 5월 들어 확 바뀌었다. 지난 1일엔 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갔다. '분더쇤' 이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의 5월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못 창포잎에/여인네 맵시 위에/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라일락 숲에/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계절의 여왕 5월의 푸른 여신 앞에/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노천명 '푸른 5월' )

그러나 우리는 이 5월을 마냥 아름답게만 느낄 수 없다. 해마다 이맘 때면 되살아 나는 광주의 아픔 때문이다.

게다가 들리는 소식도 하나같이 우울하다.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지고 물가 오름새도 심상치 않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등 주변 환경도 불리하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우리 정치권은 오불관언, '성골.진골 투표' 같은 꼼수로 국민들을 실망시킬 뿐이다. 아름다운 계절 5월을 진정 아름답게 하라.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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