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 뉴스 <84> 일본 정국의 뜨거운 감자 ‘후텐마 기지’ 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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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가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정부는 2006년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안의 다른 기지로 옮기기로 합의했지만, 지난해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 문제가 꼬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밖 또는 나라 밖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미 합의한 국가 간 약속을 깰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하토야마 총리는 곤혹스러운 입장입니다. 후텐마 문제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정리했습니다.

정현목 기자

오키나와 주민은 내보내고 싶고 미국은 떠날 수 없고 …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한가운데 위치한 후텐마 미군기지. 시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70여 기의 헬기(작은 원 안)와 항공기가 배치돼 있다. [블룸버그]

‘슬픈 역사’ 지닌 동북아 전략적 요충지

일본 열도 최남단의 섬 오키나와는 일본 47개 현 가운데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으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이 일본 본토 상륙을 위한 중간 거점으로 점령했고 이 과정에서 오키나와 주민 4명에 한 명꼴인 15만 명이 희생당했다. 일본 본토는 1951년 미군의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오키나와는 오랫동안 미국의 관할권 아래 있다 72년에야 일본에 반환됐다. 주권은 반환됐지만 섬 전체에 미군 부대가 산재해 있는 현상은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대만과 한반도에 가까운 절묘한 위치로 인해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서 최대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동맹은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반면 지역민들 사이에는 주일 미군기지의 존재가 오키나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고, 역사적으로도 일본 본토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뿌리 깊다. 이로 인해 일본 정부 또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권익을 배려하고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 상징적 존재가 후텐마 기지다. 후텐마 기지는 지리적으로 오키나와 섬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의 인프라 확충이나 개발계획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면적은 480만㎡로 기노완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한다. 주변에는 주택과 학교 등이 밀집해 있다. 평지가 별로 없는 지역에 땅의 대부분을 미군기지가 차지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전쟁 전에는 한가로운 농촌이었지만 미군이 오키나와 점령 후 비행장으로 만들었다. 일본 본토 결전을 대비한 포석이었다. 현재는 미 제36해병 항공군의 헬기부대를 중심으로 70여 기의 항공기와 헬기가 배치돼 있다. 길이 약 2800m의 활주로를 비롯해 격납고, 통신·수리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오키나와는 코앞에 대만이 있어 중국을 견제하기에 최적의 입지다. 반대 방향으로는 한반도까지 작전을 펼 수 있다. 북한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정찰기가 후텐마 바로 북쪽의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발진한다. 오키나와 기지 문제가 한반도의 안보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미군의 일본 소녀 폭행으로 불붙은 반환운동

95년 미해병대원 3명이 당시 12세의 일본인 소녀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자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이 사건은 불붙고 있던 미군기지 반환운동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현내의 보수·진보세력 모두 기지를 폐쇄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당시 하시모토 정부는 ‘오키나와 주민의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미 정부와 협상을 진행해 96년 4월 후텐마 기지의 반환 합의를 이끌어 냈다.

반면 미국은 후텐마 기지를 대체할 시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난항 끝에 일본 정부는 2002년 7월 캠프 슈워브 앞바다를 매립해 대체 시설을 만들기로 기본 방침을 정했다. 2004년 8월 후텐마 기지 근처의 오키나와 국제대 캠퍼스 안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조기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양국 정부는 다시 협상을 벌여 2006년 5월 대체 시설의 건설 위치를 캠프 슈워브 앞바다에서 연안부로 바꿔 V자형 활주로 2개를 만드는 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건설계획과 안전·환경대책 등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간 이견으로 자민당 정권하에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기지 이전” 내건 민주당 집권에 미국 곤혹

지난해 중의원 선거를 통해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내 이전에 반대해 왔다. 미군기지 수용으로 오랫동안 오키나와가 고통받아 왔기 때문에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 또는 아예 일본 밖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대로 후텐마 기지의 현 밖 이전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자민당보다 더욱 ‘친(親)오키나와’적인 입장이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해 선거전에서 “최소한 현 밖 이전”을 주장했다. 오키나와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오키나와의 가장 큰 관심은 후텐마 기지 이전이었고, ‘현외 또는 국외 이전’ 공약을 내건 민주당에 거는 기대는 컸다. 지난해 총선거에서 자민당은 오키나와현의 네 개 선거구에서 모두 패했다.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 정권 교체를 바라는 민심이 표출된 결과였다.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미국의 조바심이 커졌다.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내로 옮긴다는 자민당 정권과의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그래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방일, 하토야마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기존의 미·일 합의를 조기에 이행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나를 믿어 달라”고 답했지만 다음 날 “기존 계획을 전제로 하지 않고, 백지 상태에서 후텐마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노골적으로 하토야마 정부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혼란 지속 땐 미·일 동맹 큰 균열

하토야마 정부는 후텐마 기지 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존 합의대로 기지 현내 이전을 추진할 경우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을 밀어 준 오키나와 주민들과 지지층의 반발이 우려되고, 공약대로 현외 이전을 밀어붙이자니 일본 안보의 축인 미·일 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를 이유로 기존 미·일 합의를 없던 일로 하면 외교상 신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후텐마 기지 이전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하토야마 총리의 태도는 최근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이 됐다.

하토야마 총리가 오키나와 현내 여러 곳(캠프 슈워브 포함)에 후텐마 기지 기능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오키나와에서는 실망감과 반발이 커져 가고 있다. 하토야마 정부가 그동안 ‘오키나와현 외 이전’ 가능성을 부풀려 놓고 이제 와 등을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연립여당인 사민당이 오키나와현 내 이전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사민당이 연립여당을 이탈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국회 운영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에 하토야마 정부로서는 피해야 할 시나리오다.

하토야마 총리 “후텐마 해결 못하면 사임”

그렇다고 미국이 하토야마 정부가 새롭게 검토하고 있는 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미국은 일단 미·일 동맹에 금이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이전 후보지를 결정하면 협의는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기존 합의안이 최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일 양국 정부가 후텐마 문제 해결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타이밍을 놓치면 후텐마 기지의 이전·반환계획이 물거품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후텐마 기지 이전은 미국으로서는 세계적인 미군 재편계획의 한 부분이다.

후텐마 이전에 따라 오키나와 내 미 해병대 1만8000명 중 8000명이 괌으로 이전하고, 후텐마 기지의 공중급유기 12기가 이와쿠니 미해병대 기지로 옮기는 등 병력과 장비의 이동이 복잡하게 연동돼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지난해 10월 일본을 방문해 “후텐마의 (오키나와현 내) 대체 시설 없이는 괌으로의 이전도 없다. 괌 이전 없이는 오키나와 주둔 병력 축소와 토지 반환도 없다”며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하토야마 정부가 후텐마 문제에 대한 대응을 잘못하면 후텐마 기지 반환, 오키나와 주둔 미해병대의 괌 이전 등이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미·일 관계까지 악화돼 정권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토야마 총리는 6일 “5월 말까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사임할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하토야마 정권에 후텐마 문제는 정권은 물론 총리 본인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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