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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경찰·불법오락실 유착관계 왜 안 끊어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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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일 오전 8시16분. 기자의 휴대전화로 부산 남부경찰서 문현지구대 소속 한 경찰관이 물어 온 내용이다. 늦었지만 당연한 일이다 싶어 위치를 알려줬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 경찰관에게 전화를 해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손님과 종업원은 한 명도 없고 오락기 전원도 모두 꺼져 있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락실 업주가 이날 본지에 실린 대연동 불법오락실 잠입 기사를 보고 그토록 빨리 이사를 갔단 말인가. 의문은 잠시 후 풀렸다. 당시 오락실에 있었다는 제보자 이모(40)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전 8시쯤 오락실에 있는데 ‘경찰이 단속 나온다’며 모두 나가 달라고 했다.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오락기 90대의 전원을 끄더니 오락기에 들어 있는 돈을 모두 빼내갔다”고 말했다. 그는 “돈만 빼는 게 아니라 비디오테이프 같은 기록장치도 모두 회수하더라”고 덧붙였다. 오락기에 돈을 넣은 손님 20여 명에게 “얼마 넣었느냐”고 물어본 뒤 80%쯤 돌려줬다”고 전했다.

이씨는 16일 오전 9시쯤에도 오락실에 있다가 경찰이 단속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종업원 안내로 두 시간쯤 다른 곳에 대피했던 상황을 제보했던 인물이다. 상황을 종합해 보면 문현지구대에서 기자에게 전화를 하기 10여 분 전에 경찰의 단속 계획은 이미 오락실에 전달됐다. 이 정도면 경찰이 사실상 불법 도박장인 오락실을 업주와 공동 경영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불법 오락실과 경찰의 유착관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이 아무리 그 현장을 고발하고 시민 제보가 잇따라도 불법 오락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버젓이 시내 중심가나 주택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경찰이 노력은 한다. 현재 부산 남부경찰서는 수사와 감찰 분야 인력을 총동원해 오락실 업주에게 연락해준 경찰관을 찾는 한편 관련 업주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그러나 수사 결과 불법 오락실이 근절될 것이라고 믿는 바보는 없다. 경찰이 지금까지 뻔히 알면서도 내부에 있는 오락실 비호세력을 제거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국민들의 경찰 불신은 다 이유가 있다.

김상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