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0주년 맞아 작품집 『대설주의보』 낸 소설가 윤대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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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을 좋아한다”

소설가 윤대녕씨는 2000년대 작가들에 대해 “더 이상 문학이 문화의 중심이 아닌, 대중문화의 시대임에도 다양한 목소리를 잘 내고 있다. 배우기 위해, 창작열을 자극받기 위해 후배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다”고 말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지난 20년 동안 내 책을 읽어준 독자들께도 새삼스레 인사를 전하고 싶다. 부디 오래오래 소중히 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음. 총총’

소설가 윤대녕(48)씨는 신작소설집 『대설주의보』(문학동네)의 ‘작가의 말’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윤대녕이라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등장한 지 20년이 흘렀다. 20주년을 맞아 첫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장편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절판됐던 소설집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개정판도 출간됐다. 작가는 “독자에게 새삼 고맙다”며 입을 열었다.

-데뷔 20주년이다.

“ 앞으로 어떻게 써야 될지 더 절박해진다. 살기 위해 쓰는 거다. 당장 못 쓰면 우울증이 온다. 슬럼프를 몇 차례 경험했는데 극심한 고통이 와 점점 입이 안 열리고 손이 안 움직여진다. 작가란 글을 쓰면서 겨우 세상에 존재하는 거다. ”

-절판된 책도 나왔다.

“안도감이 든다. 나답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설집인데 몇 년간 절판됐었다. 꼭 손 보고 싶었던 부분을 고칠 기회가 있어 고맙고, 독자들에게 덜 미안하다.”

-『은어…』는 얼마나 다듬었나.

“첫 소설집이라 비문이 좀 있고, 부사나 형용사를 과도하게 사용했다. 첫 책의 느낌은 남겨놓고 싶어 독자가 눈치 못 챌 정도로만 다듬었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담백하게.”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하드보일드 문체가 좋다. 옛날엔 수식이 많은, 화려한 문장을 좋아했다. 요즘엔 담백하고 건조한 게 좋다. 필요한 문장만 쓰면 사건 진행이 빨라지고 여백이 는다. 독자가 개입하거나 공감할 공간이 많아진다. 독자들의 공감을 간절히 바라는 게다.”

-독자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지난해 팬카페 10주년 모임에 초청받았다. 망설이다 나가 결국 노래방까지 갔다. 그때 새삼 독자가 피부로 인식된 모양이다. 과거엔 막연했다. 밖에 나가는 걸 지나치게 꺼리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독자와 어울린 나 자신에 놀라고 안도감도 들었다.”

-첫 책으로 90년대 대표작가가 됐다.

“과도한 조명에 당황했다. 내내 부담이 컸다. 나와 상관없는 텍스트인 소설의 문젠데…. 비껴나 있기 위해 여행을 많이 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고, 수평적으로 많은 작가 중의 하나가 돼 심정적으로 편안해졌다.”

-표제작 ‘대설주의보’는 사소한 오해로 헤어진 뒤 긴 세월 엇갈리기만 하던 두 남녀가 결국 사랑을 이루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결말로 끝난다. 해피엔드는 이례적인데.

“성장기에 조부모 밑에서 혼자 컸다. 수동적으로 웅크리는 방어의식이 작품 속에도 있었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사람이 그렇게 좋다. 늙어가는 징조일 텐데…. 2008년 백담사에서 머물며 지금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내가 달라질 거라는 느낌을 확연히 받았다. 그런 심정적 변화가 반영된 것 같다. 소설엔 남과 여가 만나는 것으로 표현됐지만, 남자도 여자도 사실은 ‘나’다. 물론 독자는 제각각 반응한다. 어떤 이는 옛 연인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결말이 소름 끼치고 무섭다고 하더라. 나는 그게 좋다. 자기 나름대로 이해하고, 자극을 받는 게 말이다. 결국 그게 소설이니까.”

이경희 기자

◆윤대녕=1962년 충남 예산 출생. 90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95년 소설집 『은어낚시통신』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표적인 90년대 작가로 분류됐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무관심, 도시적 감수성, 수공업적 정성이 느껴지는 미문(美文) 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초반 2년간 제주도에서 창작활동을 했고,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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