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상해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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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만 사람들 사이에 '상하이(上海)열풍' 이 한창인 모양이다. 사업.진학.관광 목적으로 상하이를 찾는 것은 이미 옛말이고 요즘은 노후 정착지로 상하이가 각광을 받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주거여건은 대만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훨씬 싼 값에 아파트와 골프장 회원권을 구입할 수 있는 상하이가 안락한 노후생활 후보지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대만인들이 이민해 살고 싶어하는 세계 10개 도시에 처음으로 상하이가 들어가 4위를 기록하면서 상하이에서 부동산거래를 할 때 주의할 점을 다룬 가이드북이 베스트셀러로 팔리고 있다. 각종 목적으로 상하이에 거주 중인 대만인이 20만명이라는 보도도 있다.

상하이 열풍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홍콩의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근호는 대만 요리와 상하이 요리가 함께 차려진 식탁 곁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만 남자와 상하이 여자 커플의 사진을 실었다.

대만 남자의 현지처들만 주로 모여 사는 동네까지 생겨날 정도다 보니 남편을 상하이 여자에게 '빼앗긴' 대만 여성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단체까지 생겼다고 한다. 중국은 혼외 커플이라도 일정 기간 동거하면 혼인한 것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아예 법을 바꿨다.

중국이 대만 보통사람들 사이에 불고 있는 상하이 열풍을 통일을 위한 '소프트 전술' 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상하이는 양쯔(揚子)강 하구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 옛날에는 '호' 라고 불렀다. 물고기를 잡는 마을이란 뜻이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 거점이 되면서 상하이는 아시아의 대표적 국제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그게 상하이의 첫번째 '상전벽해(桑田碧海)' 였다면 두번째 상전벽해는 1990년 상하이에 여의도 넓이의 60배에 달하는 푸둥(浦東)지역이 새로 개발되면서 시작됐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전략으로 상하이는 10년 만에 3백억달러가 넘는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였다. 그 중 상당액이 대만에서 왔다.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은 약 5만개로 투자액이 7백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1월 상하이를 둘러본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은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천지개벽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상하이 열풍까지 간파했는지는 모르겠다. 남북을 이어주던 금강산 뱃길마저 곧 끊길 상황이다. 金위원장이 상하이 열풍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는 것일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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