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을 행복하게 하는 두 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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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16면

이상민

17일 밤.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에서 KCC에 져 탈락한 삼성이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시즌을 마친 뒤풀이를 했다. 이상민(37·삼성)은 이날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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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은 담담하게 패배의 기억을 떨쳐내고 있었다. “올해도 고참이라고 안 봐주고 일찍부터 후배들이랑 같이 훈련하라고 하면 나 진짜 그만둘 것”이라며 ‘은퇴 불사’ 농담도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아, 이상민은 올해 은퇴할 마음은 전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시즌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이 더 심했던 이상민은 시즌 내내 “이제 안 되겠어” “그만해야겠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상민이 농담을 섞어 가면서 다음 시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은퇴 전 마지막으로 우승하고 싶어서.

그는 이번 시즌 귀화 혼혈선수 이승준을 만났다. 시즌 전 농구 전문가들은 “높이가 유일한 약점이던 삼성에 수준급 빅맨인 이승준이 들어오면서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고 했다. 시즌 전에 이상민에게 “이번이야말로 우승 기회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우승이 어디 그렇게 쉬우냐”면서도 “정말 은퇴하기 전에 우승은 꼭 한 번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는 17일 뒤풀이 자리에서 “이승준이 들어온 걸로 ‘이제 됐다’고 흥분해서 꼼꼼하게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삼성은 우승 후보로 꼽히며 야심 차게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의 부진 등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서 결국 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흔히 ‘우승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 한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안달을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노력을 게을리 하면 근처에 갈 수조차 없다. ‘나에게 우승이 오지 않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대범하게 마음먹은 순간 완벽하게 찾아오기도 한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낸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는 보는 사람이 질릴 정도로 냉정하게 경기를 했다. 그처럼 강한 정신력으로 완벽한 연기를 해낸 비결을 묻자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결정하는 일이라서 그 주인공이 내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상민은 ‘마음대로 안 되는 일’에 대해 한 가지 더 이야기했다. 아들 준희(9) 얘기였다. 이상민은 “야구나 축구를 하라고 달래는데도 농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며 “얼마 전 레이업슛을 가르쳤는데 오른손 레이업은 곧잘 하는 녀석이 왼손 레이업은 아무리 가르쳐도 못 하더라. 내가 어릴 때 딱 그랬다. 왼손 레이업슛을 못 해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얘가 나를 닮아 못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 답답하더라”고 말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은 우승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말을 하는 이상민의 얼굴은 왠지 행복해 보였다. 왼손 레이업슛을 잘 못하는 아들이 “죽어도 농구를 해야 한다”고 우기는 모습이, 그리고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이제 체력이 달려 후배들 수비하기도 버겁지만 마지막으로 반드시 우승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차피 우승은 하늘이 내리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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