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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초일류 기업의 '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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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기업들이 가장 신경쓰는 것 중 하나가 IR(Investors Relations)이다. 투자자, 다시 말해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을 상대로 하는 기업설명회다.

IR는 현재의 주주뿐 아니라 잠재 주주들도 겨냥한다. 기업의 영업계획과 실적을 알려주고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투자자를 계속 붙잡아 두는 동시에 새로운 투자자를 속속 끌어들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IR의 구체적인 목표는 좋은 의미의 주가관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이 IR에 큰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IR는 이같이 매우 중요하나 본질은 간단하다. 투자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나 기업이나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까지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 역시 좋은 소식은 널리 알리고 싶은 반면 그렇지 않은 것들은 언급을 피하거나 아예 감추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삼성전자도 최근 그런 우(愚)를 범했다. 지난주 올 1분기 실적과 향후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IR 자리에서였다. 회사측은 1분기 이익이 1조2천4백억원으로 전분기보다 7% 늘었다고 설명했고, 대다수 국내 언론들은 이 설명에 충실한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기업의 실적을 과거와 비교할 때는 전분기가 아니라 전년 동기를 기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계절적으로 상황이 같은 시점과 견줘봐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 기업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두가지 수치를 다 밝히는 것도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날 삼성전자는 전년동기와 비교한 수치는 밝히지 않았다. 삼성전자 홈페이지(http://www.sec.co.kr)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경우 올 1분기 이익이 22%나 감소한 사실을 덮어두려고 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이날 한가지를 더 빠뜨렸다. 달러를 기준한 실적이다. 무엇보다 올들어 달러가치 오름세(원화가치 하락)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수출이 줄어, 벌어들인 달러가 예컨대 8% 감소했다고 해도 달러가치가 10% 오르면 원화를 기준한 수출은 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달러를 기준한 실적을 밝히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을 오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삼성전자의 1분기 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원화 기준으로는 22%, 달러 기준으론 36%나 줄었다고 보도했다. 7% 증가(전분기 대비)라는 수치는 기사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답게, 또 한국의 간판기업답게 삼성전자는 앞으로 투자자들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충실히 제공해야 한다. 솔직함보다 더 힘있는 IR는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한가지 더 주문할 것은 주당 이익(EPS)의 공표다. 선진국 기업들은 실적을 발표할 때 당연히 이것을 곁들인다. 그래야 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은지, 낮은지 판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EPS는 또 다른 회사와 실적이나 주가를 비교하는 데도 아주 유용한 지표다. 무엇보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주당 이익을 공표할 경우 다른 기업들도 따라 나서지 않겠는가.

심상복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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