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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낙하산 인사청탁 얼마나 심했기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윤철(田允喆)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주 여당인 민주당에 "그동안 공기업의 낙하산식 인사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받아왔다" 며 "당에서도 이 문제에 협조해 주기 바란다" 고 요청했다.

田장관은 지난 3월에도 "대차대조표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을 공기업 감사 등으로 보낸 것은 문제"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공공부문 개혁을 총괄하지만 그래도 이 정권의 현직 장관으로서 쉽지 않은 말을 한 田장관의 용기를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정치권의 인사 청탁이 얼마나 잦고, 집요하기에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련 등 정치권 인사들이 공기업의 자리를 겨냥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산하 단체장 5백50여개 자리 중 오는 6월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곳이 무려 40~60개나 되기 때문이다.

가스기술공업.증권예탁원.대한투신 등의 장 자리를 놓고 뒷말이 무성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 한 자리 차지하지 않으면 이 정권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청탁과 줄대기가 극성이라는 소리도 있다.

물론 정치권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상급기관인 정부 부처도 그동안 '인사 적체 해소' 를 이유로 수많은 퇴직 공무원을 공기업으로 내보냈다. 공기업 개혁이 오랫동안 절체절명의 화두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아무런 전문성과 경영 능력이 없는 인사들을 공기업으로 내려 보낸 '낙하산 인사' 때문이었다.

이렇게 낙하한 공기업의 장과 임원들은 그저 인사권자인 정치권과 정부 부처에 잘 보이려는 데만 신경썼지 기업을 제대로 경영하는 일은 뒷전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재벌 등 4대 부문 개혁 중 가장 먼저, 가장 철저히 진행됐어야 할 공공부문 개혁이 가장 더뎌졌고, 이로 인해 정부의 '개혁 의지' 가 의심받게 됐던 것이다.

정부가 제2차 공기업 경영혁신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기업 인사를 '대선의 전리품(戰利品)' 이나 정부 부처의 '하급기관' 쯤으로 여기는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들의 인식부터 뜯어고쳐지지 않는 한 공기업 경영이 제대로 혁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기업 경영 혁신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민영화를 통해 주인을 민간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물론 민영화에 따른 공공 이익 침해 여부는 면밀히 검토돼야 하지만, 그래도 공기업 개혁 정책의 초점은 가능한 한 민영화에 맞춰야 한다. 지배구조 개선에도 보다 역점을 둬야 한다.

현재 비상임이사제와 사장추천위원회제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결과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정부.정치권의 간여와 낙하산 인사로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차제에 공기업 임원에 대한 문책 메커니즘도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의 집단소송제나 고객에 의한 간접 사장 평가제도 생각해 봄직 하다. 인원감축이나 자산매각 등이 공기업 개혁의 요체는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없애고 제대로 된 인사를 장으로 앉혀 책임경영을 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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