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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금융위기의 줄기세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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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직전에 발행된 경제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이 농담의 진실성을 잘 알 수 있다. 국내 기관, 국외 기관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기상청의 예보가 자주 틀린다고 사람들이 비난할 때 슬그머니 뒤로 숨는다. 기상청 직원들과 갑작스러운 동료 의식을 느끼면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대해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사회의 기대와 비판과는 달리 경제학은 예측을 본업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반대로 경제학은 시장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항상 가르쳤고, 그러한 이론으로 노벨상을 여러 개나 수상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세계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사후적이나마 밝혀내지 못한다면 이는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던 것을 나열하면 신문 한 장을 가득 채울 수 있다. 모두 다 평소에 미워하던 것을 제각기 하나씩 골라 제거 대상의 더미에 던져 넣고 있다. 이러한 식의 논의는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암에도 다른 암세포의 근원이 되는 줄기세포가 있다고 한다. 이를 찾아내어 억제하지 못하면 다른 치료는 무용지물이 된다고 한다.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줄기세포를 발견하고 이를 억제하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경제학자와 세계 지도자에게 맡겨진 시대의 책무일 것이다.

우선 부차적이거나 통제가 불가능한 요인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첫째, 금융위기의 원인을 세계화나 자유주의에서 찾으려는 거대담론적 논의는 적당한 수준에서 멈추어야 한다. 세계화가 한 나라의 금융위기를 세계로 확산시키는 통로를 제공했으며, 시장에 대한 맹신이 규제의 도입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지나치게 사변적이거나 정치세력에 포획되기 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속페달이 불량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몽땅 버려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피해야 한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자동차 급발진의 원인과 통제 방법이다.

둘째, 이번 위기의 원인을 글로벌 불균형에서 찾는 미국인들의 논리도 약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 논리의 요체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이 저축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미국의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바람에 미국의 금리가 낮게 유지되었고 이로 인해 주택 버블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미국의 방만한 통화정책과 금융규제 실패라는 근원적 원인을 은폐한다. 필자의 귀에는 술값이 더 비쌌더라면 술을 덜 마셔 건강을 지킬 수 있었으리라는 술꾼의 푸념과 진배없이 들린다.

셋째, 금융기관 CEO의 보상체제, 수학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위험관리, 신종 금융파생상품, 투자은행과 펀드의 첨단기법 등 수많은 미시적 요인들에 대한 논의도 뒤로 미룰 필요가 있다. 이들이 반복되는 대규모 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일 가능성은 작다. 이들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나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서도 대규모 금융위기가 공통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금융부채를 장부에 빠짐없이 노출시키고 금융부채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증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방식에 모든 논의를 집중하는 것이 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이며 실용적인 해법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부채에는 민간 부채뿐만 아니라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정부와 공적기관의 부채도 포함되어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감독당국이 버블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실용적이지 않다. 자산가격의 증가가 버블인지 아닌지를 판별해내는 일은 초음파 사진 없이 태아의 성별을 알아내는 일보다 힘들다. 또한 부채의 급증을 동반하지 않은 버블은 터졌을 때 단순 골절처럼 치료가 비교적 용이하나 부채 팽창을 동반한 버블의 붕괴는 경제 전체를 난치병 환자로 만든다.

아드레날린 과잉의 학자와 경영인이 경제학을 초월하는 새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할 때, 공약의 포로가 된 정치가가 인플레나 버블의 방지보다는 일자리 증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외칠 때, 그리고 금융감독의 책임자가 가족과 노후를 위해 규제의 손을 거두어들일 때, 그때 민간과 정부의 부채가 소리 없이 암적 팽창을 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은 지구온난화 방지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의 과업일 것이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