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살리자] 5·끝 이렇게 풀어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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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방의 소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하려다 보니 대표 선수에게 돈과 노동력을 몰아주는 '불균형 성장 전략' 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외환 위기는 이같은 전략이 더는 먹혀들 수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제 지방 문제를 풀려면 불균형 성장 전략의 틀을 통째로 바꾸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권한을 주자=대통령 직속기관이자 총리가 위원장인 지방이양추진위원회가 내놓은 '지방 이양 확정 사무 내역' 을 보면 1999년 8월 출범한 이후 3백21건의 사무를 지자체에 넘긴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지자체로 권한을 넘긴 것은 40%(1백29건)고, 나머지는 광역시.도에서 시.군으로 이양된 것이다. 게다가 1백29건 중 실제 법안이 통과돼 지방으로 권한이 넘어간 사무는 20건에 불과하다.

서울시립대 박정수(행정학)교수는 "정작 지방이 원하는 기능은 중앙이 꼭 쥐고 있다" 며 "중앙정부가 맏형 노릇을 지나치게 고집하고 있다" 고 말했다.

◇ 돈을 주자=경기도 이천시에는 OB맥주.진로 등 술 공장이 네 곳이나 있다. 이들이 내는 국세(주세.부가가치세 등)만 연 6천억원. 그러나 이천에 떨어지는 지방세는 단 한푼도 없다.

지자체에 돈이 가게 하기 위해선 세제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청주대 손희준(지방재정)교수는 "국세로 거두는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는 지방 관련성이 큰 조세이므로 일부는 지방세로 전환해야 한다" 고 제안했다. 부가세의 10%를 지방소비세로 돌릴 경우 전국적으로 2조3백69억원의 지방 재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강원대 구정모(경제학)교수는 "중앙정부는 부가가치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면 지역간 세수 격차가 더 커진다고 주장하지만, '역교부금 제도' (상황이 좋은 지자체에서 나쁜 곳에 건네주는 제도)로 해결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양여금 제도의 개선도 시급하다. 전북대 윤석완(경제학)교수는 "도로와 관련된 지방 양여금을 구간까지 세분화해서는 지자체에 재정 운영 권한이 전혀 없다" 며 "사용 용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도록 해야 한다" 고 제안했다.

◇ 지역별로 '산업 수도' 를 육성해야=김태동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지역 대학과 연계된 산업과 기술 개발 체제를 구축해 지역마다 경쟁력이 있는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게 절실하다" 고 말한다. 기술 경쟁력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공학(BT)을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김기탁 상주대 총장은 "80년 전통의 상주농잠학교를 모태로 잠사와 관련한 우수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면서 "대학도 무조건 규모를 따지기보다 지역 경제에 일조할 수 있는 특화 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지방에 권역별로 '산업 수도' 를 육성해 지역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기되 이들 거점도시에는 중앙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을 설치해주는 등의 지원을 하자는 제언이 많다.

권오혁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농어촌 지역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지방 중소도시들을 산업 및 생활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 며 "프랑스.독일.일본 등도 대도시 중심의 성장 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지방 소도시를 거점으로 지역 개발을 추진해 왔다" 고 말했다.

◇ 이전 여건을 갖춰야=민간 기업의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해 핵심적인 중앙 행정부서의 이전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충북대 황희연(도시공학)교수는 "청 단위 행정기관이 대전으로 이전했으나 가족이 함께 가지 않아 수도권 분산 효과는 미미했다" 며 "가족이 같이 갈 수 있도록 좋은 학교와 주택.편의시설을 갖춘 배후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고 지적했다.

◇ 수도권에도 윗목.아랫목 있다=수도권이라고 해서 모두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경기.인천 지역 주민들은 경제력 집중 현상이 수도권 대 비수도권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 대 비서울의 문제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지역의 경우 "서울에서 분산된 인구만 떠맡았을 뿐이지 먹고 살아야 할 터전은 모두 수도권 관련 규제로 꽉 막혀 있는 상태" (문병대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장)라는 것이다.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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