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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CEO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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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98년 6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아시아 위기를 극복할 스타 50인' 중 한명으로 김정태 당시 동원증권 사장을 꼽았다. 무명에 가까웠던 증권인 김정태의 화려한 데뷔였다. 선정 사유는 동원증권의 무차입 경영과 투명 경영. 97년 5월 동원증권 사장에 취임한 김정태씨는 5000억원 규모에 달했던 차입금을 9월 말까지 모두 갚아버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만큼 남의 돈을 빌려쓰는 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몇 달 뒤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수많은 금융회사가 간판을 내렸지만, 차입금이 전혀 없던 동원증권은 오히려 우량 증권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98년 8월 김정태 주택은행장의 선임은 금융계의 이변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 51세로 은행장 중 최연소였을 뿐 아니라 은행원과 관료 출신만이 차지하던 은행장 자리가 증권사 사장에게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해 말 김 행장은 사고(?)를 쳤다. 전해에 161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주택은행이 4500억원의 적자를 낸 것이다. 장사를 잘못한 게 아니라 남보다 먼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회계기준을 엄격히 적용한 탓이었다. 국내 금융계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제야 신뢰할 만한 회사를 찾아냈다"며 환호했다. 곧바로 외국인들은 주택은행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CEO(최고경영자) 주가'라는 말이 국내에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김정태식 역발상의 근원은 원칙이다. 무차입 경영, 엄격한 회계기준의 적용에 따른 적자 등은 경영의 기본원칙을 고집하는 조치였다. 또 시선을 정부나 권력 실세가 아닌 시장과 주주에게 맞추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금융당국의 요구에 맞서게 되고 미움을 사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스타 CEO'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주택은행장에 취임하면서 월급을 1원만 받는 대신 스톡옵션을 요구하고, 2002년 스톡옵션으로 얻은 이익 100억원 중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는 등 스타다운 모습도 보여줬다.

어제 김 행장이 통합 국민은행장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원칙론자.시장주의자였던 그를 은행장 자리에서 끌어내린 게 묘하게도 회계기준 위반 혐의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그가 국내 금융계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 스타 CEO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세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