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생명윤리委에 관심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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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78년 체외수정(IVF)을 통해 첫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킬 때 의사들은 실험실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 배아(胚芽)를 만들었다.

배아의 '도덕적.법적 지위' 는 무엇인가? 배아도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 배아를 성인이나 유아와 같은 인간이나, 여성의 몸의 일부로 간주되는 태아로 보기 힘들다면 대체 배아는 무엇인가? 잠재적 인간인가? 불임 클리닉이 보관하는 배아는 누구의 소유인가? 배아가 정자.난자 제공자의 동의를 얻어 만들어진다면 이들은 배아를 제3자에게 넘기거나 매매해도 되는가?

지금도 계속되는 배아 논쟁은 이미 이 때부터 시작됐다. 의사나 과학자들은 배아 연구가 불임이나 유전병 극복을 위해 필수적이고 발생의 신비를 풀 열쇠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를 자유롭게 허용할 것을 주장했다.

영국의 경우에는 10년간 숙의 끝에 90년 통과된 법안에서 불임 관련 배아 연구를 허용하는 불임 클리닉에 대한 상세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법제화했다.

미국은 이런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78년 결성된 윤리위원회는 배아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레이건의 공화당 정부는 이를 묵살했고, 이후 미국의 배아연구는 국립보건원 같은 공공재단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사설 클리닉에서만 자유롭게 허용됐다.

93년 클린턴은 배아 연구를 재검토하는 국립보건원 패널을 만들었다. 의사.과학자.윤리학자.정책결정가.시민대표로 구성된 이 패널은 '배아가 인간 생명의 발전 형태로 심각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지만, 유아나 어린이와 동일한 도덕적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고 그 지위를 정의하면서 배아가 수정 후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도덕적 인격체로 성장한다는 '발전론' 의 입장을 채택했다.

패널은 배아에 상하좌우를 구별하는 '원시선' 이 생기는 2주 이전에는 배아를 인간으로 보기 힘들다는 데 합의하고, 2주까지 정부가 배아 연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러나 이는 배아 연구를 낙태와 동일시한 낙태 반대론자와 종교계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고, 클린턴은 당시의 정치적 고려를 우선해 배아 연구 지원을 다시 백지화했다.

배아 연구는 97~98년 다시 전면에 부상했다. 첫째 이유는 동물 복제의 성공이었고, 둘째는 98년 말에 미국 과학자들이 장기나 조직으로 발달하는 배아간세포를 분리했기 때문이었다.

배아 연구는 한편으로는 인간복제로 이어지는 재앙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의 부족을 해결할 의학 혁명으로 간주됐다.

이에 클린턴 정부는 배아 연구를 지원하는 쪽으로 선회했지만,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미국은 새 대통령을 맞았다. 낙태에 대해 훨씬 보수적인 부시는 보수적 지지층을 의식한 정치적 계산과 미래의 '실익' 을 저울질하고 있다. 의학적 이득을 우선시한 영국은 2000년 말 배아연구를 허용하는 법안을 의회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켰다.

한국의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에서도 지금 이 배아연구 문제를 토론하고 있다. 위원들은 이것 이외에도 인간복제.유전자변형.유전정보.생명특허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문가로만 구성되던 종전의 위원회와는 달리 시민대표와 윤리학자.종교계 대표들도 참여한 범국민적 위원회다.

그런데 위원회 활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간헐적이고 국민의 관심도 미미하다. 위원회의 홈페이지(http://kbac.or.kr)에는 자유게시판도 있건만 인간복제에 대한 TV 방송 이후 약간의 글이 올라왔을 뿐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과학자나 배아 연구를 낙태와 동일시하는 일부 종교계 인사를 제외하고는 이 민감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회구성원을 찾아보기 힘들고, 이는 자칫 위원회의 결론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 수 있다. 5월 중에 합의안을 만들고 생명윤리 법안을 작성할 자문위원회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때다.

홍성욱 <토론토대 교수.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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