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2004] 법원서 또 대통령 결정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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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권자 등록에 도용할 이름이 '딕 트레이시' '메리 포핀스'(이상 영화 주인공)밖에 없었나' '민주당에 우호적인 흑인.히스패닉계가 투표하지 못하도록 전과자 리스트를 조작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미국 대선에서 양당은 유권자 등록 단계부터 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은 "마지막 투표함이 열려도 결과가 확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2000년처럼 법정에서 승패가 갈라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줄 잇는 불법 시비=공화.민주당은 불법 유권자 등록이 판을 치고 있다고 서로 비방했다.

에드 길스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은 최근 민주당의 불법 선거 사례를 조목조목 공개했다. 그는 "민주당의 부정표 긁어모으기가 전국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콜로라도주의 20개 카운티에서 유자격 유권자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유권자 등록을 마쳤으며 오하이오주에선 코카인을 주고 마약 중독자들을 등록시킨 사례도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뉴멕시코주에선 13~15세 청소년들에게도 등록을 권유하는 우편물이 잇따라 적발됐고 네바다주에선 불법 입국자가 등록한 사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테리 매컬리프 위원장은 즉각 반격의 포문을 열었다. 매컬리프는 "불법 투표를 막자는 건지 민주당 성향 유권자 밀집지역의 투표자 수를 끌어내리겠다는 건지 도대체 공화당의 의도를 모르겠다"면서 "공화당원들의 불법 감시 활동에서 탈법 행위가 발견되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결과 두 후보의 득표차가 충분히 크지 않을 경우 양당 모두 투표인 자격 시비, 재검표 요구, 법정소송을 제기할 계획이어서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분석했다.

◆ 변호사 총동원=민주당은 소수민족계 표밭 지키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지난 대선 최대 격전지의 하나인 플로리다주에만 2500명의 변호사를 파견, 변칙 투.개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 동원한 변호사는 모두 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공화당 성향의 주정부가 서류 미비 등의 이유로 소수민족이나 빈민층의 유권자 등록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감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단 투표를 한 뒤 나중에 유권자임이 확인되면 유효표로 인정받는 제도가 2002년 도입돼 참정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들의 유자격 여부를 심사하는 문제는 선거 후에도 한바탕 변호사들의 설전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공화당 역시 선거의 방향타를 쥐고 있는 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주 등 격전지에 수천명의 변호사를 배치했다. 또 부동표가 많아 가장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플로리다주엔 최정예 변호사 265명을 상주시켰다.

양측은 오하이오.뉴멕시코.펜실베이니아주에서 이미 유권자 자격 등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느냐는 선관위가 아니라 법정에서 가려지는 상황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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