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용쟁취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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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중 군용기 충돌사건은 사건 발생 열하루 만에 중국이 미군 승무원들을 송환함으로써 일단 고비를 넘겼다. 양측은 사태가 장기화하면 모두 손해라는 생각에서 봉합(縫合)을 서둘렀다. 하지만 잘잘못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중국은 이번 사건이 미국 정찰기의 불법적인 스파이 활동에서 비롯됐으므로 스파이 활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영공 밖의 정찰비행은 합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앞으로도 정찰활동을 계속할 방침이다. 남중국해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의 격랑(激浪)은 쉽게 잠잠해질 것 같지 않다.

이번 사건이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중국은 남중국해 전체를 영해로 간주한다. 경제적으로 대(對)유럽 수출 루트, 중동산(産) 원유의 수입 루트일 뿐 아니라 중국 전체 석유 매장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석유.천연가스가 묻혀 있다.

또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하다. '해방' 돼야 할 대만을 비롯해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시사(西沙.파라셀)군도와 난사(南沙.스프래틀리)군도가 위치하고, 일본이 인도양으로 나가는 생명선인 시 레인(sea lane)이 지난다. 대중화(大中華)를 지향하는 중국에 없어선 안될 존재다.

최근 중국이 군비증강, 특히 해군력과 공군력을 집중적으로 늘리는 이유도 남중국해를 확실히 지키려는 것이다. 대양(大洋)해군 전략을 채택한 해군은 원양(遠洋)에서 장기간 작전이 가능한 잠수함.구축함을 도입하고, 항공모함을 공격하기 위한 순항미사일을 자체 개발 중이다.

공군도 새 기종을 도입하는 한편 걸프전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유고 공습에서 교훈을 얻어 적의 공중공격을 원거리에서부터 차단하기 위해 방위범위를 크게 넓히는 등 적극방위로 전환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남중국해를 집중 감시해 왔다. 이번 사고를 일으킨 EP-3기는 지난해부터 월 1회꼴로 정찰활동을 해왔다. 최근엔 중국군이 하이난(海南)섬을 대만으로 상정하고 벌인 모의훈련을 정찰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도입한 소브르메니급 구축함을 집중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항공모함 공격용 순항미사일을 탑재할 소브르메니급 구축함은 유사시 미 해군 제7함대 소속 항공모함들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미국은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군사.경제.기술.문화 네 가지가 결합된 종합적 의미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국'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했다. 미국에 주어진 과제는 어떻게 하면 패권국가의 지위를 오래도록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을 가장 강력한 도전자로 지목했다.

새로 취임한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 주적(主敵)으로 규정함으로써 반(反)중국 컬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세계를 감싸안은 독수리(鷲)와 승천(昇天)을 노리는 용(龍)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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