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 죄수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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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두 사람의 공범이 각기 다른 감방에 갇혔다. 수사관이 두 사람에게 똑같은 제안을 한다. 무죄를 주장해도 정황증거가 불충분하니 2년 징역형을 받는다.

당신이 유죄를 자백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공범자에게 유죄를 내리게끔 협조한다면 무죄로 풀어주고 공범자는 5년형을 살 것이다. 둘다 상대 유죄를 인정하면 똑같이 4년형을 산다.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두 사람은 여기서 갈등한다.

*** 되풀이 된 언론탄압 논란

그러나 결과는 대부분 둘다 유죄를 인정함으로써 4년형을 살게 된다. 이것이 로버트 트리이버스가 설명하는 상호 이타주의 이론의 기본틀인 죄수의 딜레마다.

둘다 무죄를 끝까지 주장했다면 2년형을 살겠지만 이기적 존재인 인간은 언제나 제 살기 위해 남을 배신하고 헐뜯음으로써 서로 망하는 4년형 함정에 빠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엔 두개의 회오리 바람이 불고 있다. 하나는 언론개혁 선풍이고 또 하나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따른 일본 규탄 소용돌이다. 먼저 언론개혁 바람을 보자. 2년 전 중앙일보 언론사태가 일어났을 때 동업 언론사들은 모두가 외면했다.

언론탄압은 무슨 탄압, 사주의 개인 비리로 자유언론을 주장하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손가락질했다. 뒤이어 언론장악문건이 나오면서 언론사들의 순망치한(脣亡齒寒)연대를 주장했지만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며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만 돌린 게 아니라 탄압 저지를 외치는 기자들을 마치 조폭 졸개처럼 매도했다.

이제 그 2라운드라 할 유례없는 세무조사.공정위 조사가 시작됐고 신문고시가 곧 발동될 언론 전체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1라운드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매도의 대상이 하나에서 셋으로 바뀐 차이다.

같은 언론이라 할 방송은 신문개혁만을 요구하고 같은 신문이면서도 일부는 침묵하거나 일부는 남의 수십년 과거를 들추면서 '쟤가 유죄예요' 소리치며 악을 쓴다. 권력과 언론은 숙명적으로 억압과 비판이라는 긴장관계로 살아갈 존재다.

비판 기능을 약화하려는 온갖 기제(機制)가 동원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같은 길을 걷는 방송과 신문이 그 압력 기제를 설치하지 못해 안달을 부리는가. 탄압의 형태는 2라운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제3, 제4라운드로 이어질 그때는 뭐라 할 것인가. 언제까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남을 비난하고 자신만의 무죄를 주장할 것인가.

부자와 보석상이 암거래를 시작했다. 숲속 지정된 장소에 돈가방과 보석가방을 각기 놓기로 약속한다. 이때 상대방이 빈 가방을 갖다 놓을지 서로가 의심한다. 결과는 둘다 빈 가방을 놓고 온다.

이 거래를 한달에 한번 꼴로 할 때 매달 배반(빈 가방)과 협동(가득찬 가방)의 선택을 놓고 인간은 반복적 딜레마에 빠진다. 이를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라 한다. 한.일관계를 보면서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가 거듭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과거를 잊고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가자는 '가득찬 가방' 을 보내도 일본쪽에서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라는 '빈 가방' 이라는 게 우리의 대일 인식이다.

그럼 어떻게 이타적 협동을 유도할 수 있는가. 미국의 한 정치학자가 배반과 협동의 양자택일 컴퓨터 토너먼트를 실시한 결과 팃포탯(Tit for Tat)프로그램이 우승을 했다. '보복' 을 뜻하는 팃포탯은 "처음엔 협력한다. 그 다음부턴 상대방이 행한 대로 한다" 는 두개의 단순 규칙으로 구성된다. 그러면서 '인정.관대함.분노.명료함' 의 특성을 지닌다고 했다(이인식의 『제2의 창세기』에서).

*** 남만 유죄라 외칠수 있나

호혜주의로 나가지 않을 때는 단호한 보복을 통해 상호협동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대북.대일관계에서 동시에 준용될 수 있는 게임의 틀이다. 그러면 누구를 향해 어떤 보복을 할 것인가. 어제 중앙일보 오피니언난에 실린 세종대 박유하(朴裕河)교수의 칼럼 '문제는 신뢰다' 가 방향과 목표를 잘 제시하고 있다.

일본 전체가 목표가 아니다. 일본의 우익 전부가 아니다. 일본 교과서 전부가 아니다. 하나의 문제 교과서를 만든 일부 극우세력의 공동화(空洞化)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 일본을 신뢰하면서 그 다수가 극소수 극우세력을 줄이는 노력에 우리도 동참하자는 것이다.

일본이 전범(戰犯)의 딜레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일본 스스로 아시아의 지도국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 언론 스스로 자신의 무죄에 남의 유죄만을 외치는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언론 스스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을 때가 됐다.

권영빈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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