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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기] 건교부 떨어진 '경찰 낙하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2일 건설교통부 장관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공항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윤웅섭(尹雄燮.59)전 서울경찰청장이 느닷없이 장관실에 찾아와 "장관과 단둘이서 할 말이 있으니 장관을 지금 만나야겠다" 고 했다. 비서들로선 사전예고 없이 찾아온 산하단체 이사장을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장관과 만나게 해주기가 곤란했다.

특히 尹이사장은 불과 몇시간 전 공단관계자들과 함께 오장섭(吳長燮)장관을 만나 취임인사를 하고 나서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약속된 분이 많아 곤란합니다. "

"거 참. 장관 만나기 어렵구먼. "

尹이사장은 아주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장관실을 떠났다.

현장에 있던 건교부 공무원은 尹이사장을 "여전히 자기가 서울 경찰청장인줄 아는 것 같았다" 고 말했다.

그는 "건교부 출신들이 공항공단 이사장으로 갈 때는 이런 일이 없었다" 며 "경찰청장 출신이 오니 다르다" 고 말했다. 요즘 건교부 내부에서 이를 둘러싼 불만의 소리가 크다. 역대로 건교부 출신들이 가던 자리에 경찰청 출신들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공항공단 尹이사장과 지난 9일 한국감정원장이 된 이수일(李秀一.59)전 경찰대학장이 바로 그들이다.

건교부 공무원들은 "공항공단이나 감정원 모두 상황이 어려워 일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냐" 고 말한다. 당시 정부측은 "경력과 조직 장악력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 내린 결정" 이라고 밝혔다. 물론 경찰청 출신이라 해도 능력이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나 두사람 모두 수십년간 경찰에서 잔뼈가 굵었다.

李원장은 4년간의 감사원 사무총장 경력만이 따로 있을 뿐이다.

어디를 봐도 공항 관리나 부동산 감정과는 전혀 무관한 업무를 해왔다. 공항공단은 비행기 이.착륙료와 공항이용료 등 큰 수입원이었던 김포공항이 인천공항 개항으로 국내선 전용으로 축소된 탓에 수입이 대폭 줄게 됐다.

살림이 빠듯한 10여개 지방공항까지 먹여살려야 할 처지다. 감정원도 업무가 민간에 대폭 허용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져 운영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인사는 결국 이러한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은 것이었다.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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