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오지에서 일하지만 장가는 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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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텐트속에서 배고픔을 이기며 공부하던 아프간 학생들이 점차 급식이 나오는 학교로 옮겨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 하루 가는 줄 몰랐어요.”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유엔식량계획(WFP) 중동·중앙아시아·동구유럽 지역본부에서 기획관으로 근무하는 김세우(40)씨는 아프카니스탄에서의 생활을 이같이 전했다. 그는 2002년부터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WFP사무소에서 일했다.

김씨는 “사진과 기록영화로만 보았던 6.25전쟁 이후의 참상과 같은 상황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목격했다”며 “오지에서 고립생활을 하고 치안불안으로 개인생활이 제한되는 어려움도 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말했다.

김씨는 마흔 살의 노총각이다. 훤출한 키에 시원시원한 생김새를 가졌지만 ‘전후 혼란한 카불에서 일한다’고 하면 선을 보겠다는 사람도 드물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 한 여성을 만났을 때 일이다. 그 여성이 “유엔 직원이라구요.그러면 뉴욕에서 근무하시겠네요”라고 물어 “유엔 직원은 미국말고도 180여개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더니 그 여성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는 것이다. 칠순이 훌쩍 넘은 부모의 결혼하라는 등살에 매년 휴가때마다 한국에 와보지만 ‘선 자리’조차 마련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이제 이곳 카이로에서 일하게 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김씨는 강조했다.

김 기획관은 중학교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그 뒤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후 1996년부터 한국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일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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