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tart] 희망이 자라는 '시골 공부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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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시 현곡면의 ‘사랑의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강사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경주=조문규 기자

27일 경북 경주시 현곡면 하구3리.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 들녘을 지나 동네로 들어서자 군데군데 홍시가 떨어져 있는 한적한 농촌마을이 나타났다.

조용하던 동네에 낭랑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수업을 마친 현곡초등학교 아이들이 공부방으로 새 단장한 학교 뒤편 마을회관 2층으로 모여들었다. 오후 1시. 아이들을 기다리던 공부방 선생님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오늘 숙제 없니? 숙제부터 할까." "선생님, 이거 설명 좀 해줘요."

아이들은 공부방 한쪽에 쌓아 둔 학습지를 들고 와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6학년생은 복습시험 쪽지를 받아든다. 학년별로 머리를 맞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잦아든다.

이곳은 바로 경주YMCA가 방과 후 공부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농촌 마을 아이들을 위해 꾸민 '사랑의 공부방'.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과 복지.건강 등을 체계적으로 돌봐주는 'We Start' 운동에 뜻을 같이한 경주YMCA가 대졸자 세 명으로 강사진을 구성해 지난 7월 문을 열었다.

현곡면은 경주시내와 10㎞ 이상 떨어져 주변에 학원이나 도서관 등 문화공간이 없는 시골마을. 도시 저소득층 지역만큼이나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열악한 곳이다.

경주YMCA 신영철(35)총무는 "농촌에서는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갈 곳이 없고 어른들은 농사일이 바빠 아이들을 챙길 수 없다"면서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We Start 5대 사업 중 하나인 교육 출발선 만들기에 참여키로 했다"고 말했다. 신 총무는 지난 여름 마을회관을 빌리고 강사 세 명을 뽑았다. 강사들의 인건비는 노동부의 지원을 받았다.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은 전교생 78명 중 25명. 아이들은 이곳에서 형과 누나 같이 자상한 선생님들의 지도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공부를 보충하고 체육.음악 등 적성 살리기를 한다. 토론 시간을 통해 발표력도 키운다.

김승범(초등 3)군은 "공부방이 집에서 가까운 데다 형님 같은 선생님에게 모르는 것은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 공부방 강사 정재락(28)씨는 "아이들이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한다"면서 "여학생들은 고민거리를 편지로 써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부방엔 사랑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경주의 한 서점 주인은 아이들 교재와 문제집을 내 놓았고 제과점은 간식을 지원하고 있다. 매달 5만원씩 내는 후원자도 생겼다. 학부모들도 "공부방 때문에 아이들 걱정을 덜었다"며 삶은 고구마를 내놓는 등 고마워했다.

그러나 어려움도 적지 않다. 2층 공부방은 합선 사고가 난 뒤 수리비 50여만원을 구할 길이 없어 지금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워지기 전 서둘러 공부를 마친다. 집이 먼 아이들은 강사들이 자신들 차량으로 데려다 준다.

경주YMCA는 앞으로 경주지역 농촌 마을 3~4곳에 공부방을 더 만들 계획이다. 특히 '경북 YMCA협의회'는 하구3리 공부방을 모델로 영천과 구미.안동.김천.포항 등지에도 농촌 공부방을 설치키로 했다.

신 총무는 "We Start 운동이 확산하도록 전국 60여 지역 YMCA에도 소외지역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 설치를 적극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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