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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명인] 누비장 김혜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봄빛을 머금은 산과 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우리나라의 전통 바느질 기법으로 만든 누비옷 역시 어머니의 따스한 품을 닮았다. 한땀씩 밤을 새워 천땀 바느질의 정성이 스며있기 때문이리라.

누비란 거죽과 안을 맞춘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규칙적으로 반복해 홈질로 바느질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만든 누비옷은 질기고 보온효과가 뛰어나다. 전통적으로 이불 등 침구류를 비롯해 보자기.주머니 등 각종 생활용품에 이용됐다.

누비옷은 5세기에 조성된 고구려 고분벽화인 감신총 서벽 무인상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우리네 생활 속에 이어져 왔다. 전쟁터로 떠나는 남편에게 방호용 겉옷으로 만들어줬고 돌 지난 아이의 무병장수를 비는 옷에도 누비가 쓰였다.

누비옷 만들기를 이어받은 전통 무형문화재 107호 김해자(49.경북 경주시 탑동)씨는 전통옷을 예술의 경기로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20여년의 세월을 누비옷 만들기에 바쳐온 김씨는 누비의 시작과 끝은 오직 정성뿐이라고 말한다.

"예부터 바느질하는 집안 아낙네의 손길에는 한국 여인의 인내와 고통의 삶이 배어 있습니다. 시부모.남편.자식을 위해 일평생을 바쳐왔던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누비옷의 기본입니다. "

어린 시절부터 집안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바느질과 한복짓는 일을 배웠던 김씨는 독창적인 누비옷을 만들기 위해 사찰과 전국 박물관의 복식자료를 뒤지며 공부를 했다.

1996년 누비옷 유일의 장인으로 선정된 김씨는 비록 서울 출신이지만 전통문화가 숨쉬는 경주에 자리잡았다. 서울.대구 등 대도시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의 공동작업 제의도 사양했다. 누비옷 최고의 아름다움은 현란한 기교가 아닌 정신적인 자기통제에서 비롯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김씨 아래서 4년여째 누비옷 전수를 받고 있는 수제자 진미숙씨도 "단순한 바느질 기교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연스런 누비옷의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는 수양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5~6명의 제자들에게 김씨가 항상 강조하듯이 누비옷 짓기는 예나 지금이나 공덕(功德)을 쌓는 수련의 과정이다.

여자 어른의 누비 치마를 0.3㎝ 간격의 잔누비로 만들 경우 두달이 넘게 걸릴 정도다. 요즘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누비옷엔 재봉틀 작업이 들어가지만 이것은 누비의 기본에 어긋나는 일이란다. 우선 옷자락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불과 2㎝ 남짓한 작은 바늘이 손끝을 타고 넘으며 만들어낸 촘촘함이 입는 사람의 몸에 꼭 들어맞도록 옷만드는 사람의 기(氣)를 넘쳐 흐르게 한다.

최근 김씨는 누비옷의 대중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세상살이에 부침하는 요즘 사람들이 누비옷 만들기를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수련생외 일반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김씨는 오는 31일부터 이틀씩 두차례에 걸쳐 '제2회 전통 누비를 위한 모임' 을 연다(문의 054-775-2631).

경주〓김종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여행쪽지>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 경주는 오랜 역사만큼 볼거리가 다양하다. 경주시내에는 천마총과 경주 박물관 등을 비롯, 보문단지 주변의 불국사 ·석굴암, 동해안쪽에는 감은사터와 문무왕릉 등 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여름철이면 포항 등 동해안 해수욕장과 연계한 피서지로도 인기다.

또한 지역 특산물로는 경주 최씨가문에서 3백여년간 이어온 교동법주(054-772-5994)와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맛으로 유명한 황남빵(054-772-2784)이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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