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시장 지게꾼 노동정책 조율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서울용산시장 지게꾼에서 노동정책의 핵으로.’

26일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에 임명된 이태복(李泰馥·51)노동일보 회장은 평생 ‘노동자의 삶’을 살아왔다.

따라서 그를 노동자의 벗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한편에서는 급진적인 인사라고 안경을 끼고 보기도한다.

그는 좌경이라는 굴레를 쓰기도한 노동운동을 하다 8년간 감옥생활을 하기도했다.

李수석은 71년 국민대 2학년 재학시 군사교육 반대시위를 하다 제적돼 강제징집됐다.제대 후 용산시장 지게꾼을 시작으로 부산사상공단 등에서 현장 노동자의 삶을 체험했다.

77년엔 도서출판 광민사를 설립해 한국 최초의 노동문제 입문서라 할 ‘한국노동문제의 구조’‘영국노동운동사’‘노동의 역사’등 20여권의 노동관련 서적을 편찬하거나 번역·출판하는 운동을 했다.

‘노동의 역사’는 당시부터 90년대 초까지 대학생과 노동자의 필독 도서였다.

그는 70년대 말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조직해 노동3권 완전 보장 등을 목표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돼 81년 사형을 구형받기도 했다(선고 형량은 무기징역).그 때 고문경관 이근안으로부터 두 달여간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86년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해 국제적인 석방운동을 벌였고 김수환 추기경과 윤보선 전대통령 등이 가세했다.

그는 88년 출소 및 특별사면 후 10년이상 산업현장을 누비며 1천여회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노동가 출신인 부인 심복자(44·현노동일보 편집인)씨를 만난것도 이때다.

89년엔 주간 노동자신문을,99년 7월엔 노동문제 종합일간지인 노동일보를 창간해 회장을 맡고있다.

지난 96년에는 김덕룡의원과의 인연으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하려했지만 당내에서 색깔논쟁이 제기되고 지금의 김대중대통령이 이끈 국민회의도 신한국당에 대해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나서 정계입문이 좌절됐다.그는 당시 입당포기 기자회견에서 “김대중총재가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색깔시비를 제기하는것에 인간적 배신감과 서글픔마저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