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스트라이크존 확대 고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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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홈런이 관중을 잡아먹는다?

홈런은 '야구의 꽃' 이다.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담장을 향해 시원하게 날아가는 흰 점을 쫓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타구가 담장을 넘는 순간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소리라도 질러보면 가슴 속에 맺혀있던 무언가가 '뻥' 하고 뚫리는 상쾌함을 느낀다.

그런 홈런이 관중을 잡아먹는다니 무슨 소린가. 홈런이 많아질수록 관중이 줄어든다는 얘긴가. 이승엽(삼성)의 홈런 신기록 행진에 국민이 열광한 것이 2년 전이다. 그런데 홈런이 프로야구 흥행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지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1980, 90년대에 비해 홈런은 늘어났는데 관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표를 보라. 물론 홈런 한 가지만 꼬집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비약이다. 정확히 짚자면 지나친 '타고투저' 탓에 야구 본래의 재미를 잃어버린 게 관중 감소의 한 가지 요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우리가 기억하는 '명승부' 는 어떤 것들인가. 아마도 수차례 타자 일순하며 투수들이 과녁처럼 쓰러져간 난타전은 아닐 것이다. 프로야구 양팀 최다득점 경기(24:14, 95년 롯데:삼성전)를 머리 속에 기억하는 팬들이 없는 것처럼 명승부는 난타전이 아닌 '명타전(名打戰)' 일 것이다.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의 이종도, 첫 한국시리즈에서의 김유동, 99년 플레이오프의 임수혁 등 짜릿한 홈런이 곁들여지면서 공.수의 균형을 이뤘던 경기다.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관중이 몰린 95년 김상호는 홈런 25개로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98년 외국인 선수 등장 이후 홈런 25개로는 '거포' 라는 말도 듣지 못한다. 이제 홈런왕 타이틀을 노리는 타자는 한때 '신화' 였던 40홈런을 들먹인다.

그 과정에서 3점대를 유지했던 팀 방어율은 4점대를 훌쩍 넘었다. 투수들의 완투 경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앞으로 정말 깨지기 힘든 기록은 백인천의 타율 0.412나 이승엽의 54홈런이 아닌 윤학길의 통산 74완투승일지 모른다.

점점 '멀리 때리기 경기' 로 변하고 있는 야구가 고유의 모습을 찾으려면 투수에 대한 배려가 병행돼야 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올해부터 메이저리그가 시도하는 스트라이크존 확대다. 메이저리그는 지나치게 늘어난 홈런포와 타자 위주의 경기 흐름을 견제하고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부터 무릎 바로 위에서 가슴 부분까지 스트라이크 범위를 확대했다. 한국은 아직 무릎위에서 허리까지다.

스트라이크 존의 확대는 야구해설가 허구연씨가 '월간중앙 4월호' 에서 지적한 것처럼 2003년 예정으로 추진되고 있는 '야구 월드컵' 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미국의 주도로 준비되고 있는 야구 월드컵에서 그들의 스트라이크 존이 적용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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