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보재정 파탄, 책임자 문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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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여당이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해 의료보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재정수요 예측도 잘못됐고, 의약분업 고비 때마다 문제의 핵심을 피한 채 정치적 결정만 한 결과가 오늘의 재정파탄을 몰고왔다는 분석이다.

정부와 여당은 의약분업 시행 전엔 "의약분업 때문에 의보 재정에서 돈이 더 지출되지는 않는다" 고 강변하다가 실시 한달을 앞두고는 "의보재정에서 1조5천억원이 더 들어간다" 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어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전망 및 요양급여 변화 추이' 자료를 통해 올해 4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하며 이중 3조7천억원이 의약분업으로 인해 새로 빠져나가는 돈이라고 수정했다.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추가 재정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 복지부는 지난해 7월 의약분업에 따른 환자의 직접적인 부담 증가는 없다고 홍보하면서 환자의 본인 부담금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다 같은해 12월 기준과 함께 본인 부담금을 올리는 방안을 입법예고까지 했으나 민주당의 반대에 부닥쳐 기준만 인상하고 본인 부담금은 환원시켰다.

이로 인한 추가 지출만도 5천4백50억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단층촬영(CT) 등 고가 의료행위를 급여에 포함시키고 연간 1백80일로 묶여 있던 요양 급여기간 제한을 철폐하는 등 지출을 계속 확대해왔다. 의보재정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 채 선심성 정치논리에 휘둘린 셈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의사 달래기' 용 수가(酬價)인상에만 급급했다. 의약분업 실시 이후 세차례에 걸쳐 22.7%나 올렸다. 그 결과 약국의 경우 지난해의 보험급여액이 전년도보다 13배나 늘어났고, 일반의원도 5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간의 분석 결과가 이 정도라면 올해는 의보 부담이 훨씬 늘어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는 쓰러진 의보재정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처방을 내놔야 한다. 수가제도와 보험혜택 범위 등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을 통해 누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거듭 지적했듯이 내년 1월로 예정된 직장의보와 지역의보의 재정 통합 문제를 연기해야 한다.

의보통합이 실현되면 보험료가 인하되고 의보재정 안정을 꾀할 수 있다던 당초 약속과 달리 직장의보 재정마저 거덜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의료기관의 허위.부당.과당 청구를 걸러내고 지역의보료 징수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복지부는 의보재정 위기 타개 방안을 다음주 초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사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의보재정 파탄 사태는 사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선 이번 기회에 책임소재를 명명백백히 가려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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