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꾸러기 책동네] '떡갈나무 목욕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봄 햇살 아래 똘똘똘 흐르는 개울 소리,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장난감 피아노를 뚱땅대는 모습…. 작가의 재기발랄한 이야기 솜씨가 돋보이는 단편 동화집 『떡갈나무 목욕탕』을 읽는 동안 내내 그런 이미지들이 연상됐다.

바깥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서 바느질이나 요리하는 걸 더 좋아하는 꼬마 수산양, 목욕탕에서 팬티 바람으로 어린 너구리와 뛰어노는 노마 아저씨, 사람들을 골려주다 놀이동산이 텅 비자 당황스러워하는 꼬마 유령 등 사랑스런 주인공들이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따스한 웃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코믹한 표정을 살린 그림들도 작품 분위기와 잘 맞는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행동엔 '착하게 살겠다' 는 목적의식이나 꾸밈이 느껴지지 않는다.

표제작 제목이기도 한 '떡갈나무 목욕탕' 의 주인 노마 아저씨는 다 잡은 너구리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사냥꾼을 위해서도 젖은 신발을 난로 불에 쬐어 말려주는가 하면, 바로 그 상처입은 너구리를 온천물에 씻겨 재워주고, 동물들이 '목욕료' 로 남기고 간 푸른 잎사귀를 들고 아이처럼 흐뭇해하는 인물이다.

또 「꽃을 삼켜버린 천사」는 실존 인물인 선천성 장애아 구원이가 소재다. '생명의 꽃' 을 거두던 천사가 어리석음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가엾어하다 결국 팔.다리는 없지만 천사의 미소를 가진 사람으로 환생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전체 여섯편의 동화 중 「나는 그냥 나야」와 「가시나무 숲의 괴물」은 단어만 조금씩 바꾼 문장의 반복, 풍부한 의성어.의태어, '흰구름' '먹구름' '어리어리' '알딸딸' 등 재미있는 등장인물들의 이름 때문에 취학 전 아이들에게도 읽어주면 좋을 듯하다. '다름' 을 서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진실을 찾는 용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 동화들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던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억지유머가 아니라 주인공의 천진스런 행동이 유도하는 웃음, 그러면서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희망의 메시지들 때문에 이 짧은 동화들의 여운은 길게 느껴진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