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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공기업 민영화 왜 하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정부는 영국석유와 영국가스.영국통신.영국항공 때문에 골치를 앓았습니다. 이들 공기업(국영기업)이 큰 적자를 내는 바람에 해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정부가 이들 공기업을 민영화한 뒤 지금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이들은 지난해 큰 수익을 올려 국가에 낸 세금이 영국 전체에서 모두 10위 안에 들었답니다.

과연 민영화가 어떤 것이기에 천덕꾸리기 오리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화시켰을까요. 우선 공기업이 생기는 이유를 알아보죠.

도로를 예로 들어볼까요. 도로는 우리가 생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냥 두면 누구도 먼저 나서 도로를 닦으려 하지 않습니다. 철도와 전력.수도.통신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것을 가리켜 사회 모두가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공동 재산이라는 뜻으로 '사회간접자본' 이라고 합니다.

개인이나 일반 기업이 만들 수도 있지만,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선 정부가 회사(공기업)를 세워 이런 것들을 만듭니다.

정부는 또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기업을 세우기도 합니다. 우리 정부가 수출을 돕기 위해 무역진흥공사를 세우고, 철강산업을 키우기 위해 포항제철을 만든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공기업의 수익은 전기료.통신료.지하철 요금과 같은 공공요금이나 정부에서 받는 수수료로 이뤄집니다.

이들 공기업은 사실 1960~70년대주택.댐.비료공장.발전소.철도.도로를 건설하는 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생산성과 효율이 떨어졌고 빚이 계속 늘어난 것입니다. 사업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공기업이 만든 물건이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해도 국민들이 이용할 수 밖에 없어 게으름을 피운 결과라고 할까요.

민간 기업은 다른 기업보다 물건을 잘 만들지 못하면 제품이 안 팔려 직원들 월급 주기도 어렵지요. 또 주식 값이 떨어져 주주들이 손해를 봅니다.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임직원들은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공기업은 독점사업이 많다 보니 경쟁회사가 거의 없어 맡은 일만 최소한으로 할 가능성이 큽니다. 돈이 잘 벌리지 않을 때도 싸게 만들거나 잘 팔리도록 개선하겠다는 생각보다 값을 올릴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특히 공공요금은 다른 요금이나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웬만하면 올리지 않도록 정부가 지도하지만 그 결과 생기는 손해는 정부가 어떻게든 메워주어야 합니다.

'정부가 감시를 철저히 하면 되지 않느냐' 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쉽지 않습니다. 공기업의 주인은 분명 국민이지만 국민은 주인으로서 감시 권한을 정치인(국회)에게 위임했고, 정치인은 이를 공무원(행정부)에게, 행정부는 이를 다시 공기업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대리인들이 많다 보니 자연히 어느 한 쪽을 꼭 집어서 잘못을 따지기가 힘듭니다. 공기업 사장으로선 적자를 줄이겠다며 인원과 조직을 축소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노동조합이 파업이라도 하면 더 골치가 아픕니다.

공기업은 또 갈수록 커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회사가 커지고 자회사가 많아야 승진도 빨리 하고, 경쟁에서 밀려나더라도 자회사로 옮겨 다른 일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정부가 1980년대 이후 한국이동통신 등을 민영화하며 공기업 덩치를 줄이려고 했지만, 결국 수십개의 공기업 자회사들이 새로 생겨난 것도 이같은 속성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기업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국민 부담을 늘리자 세계 각국은 80년대부터 공기업 개혁에 나섰습니다. 공기업이 독점해온 분야에 민간 기업을 참여시켜 경쟁하도록 하거나, 공기업을 아예 민영화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요즘 나름대로 열심히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있습니다. 공기업을 민간 기업에 맡겨 '경영을 잘하면 잘 벌고, 못 하면 못 버는' 책임경영 체제로 바꾸는 것이죠. 독점의 우려가 있는 공기업은 몇개 회사로 분할해 서로 경쟁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것을 막는 일도 어려운데, 있는 공기업을 정리하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들겠어요?

공기업과 그 노조들은 '민영화하면 요금이 올라간다' '재벌들이 독식한다' '(공기업이 외국에 팔릴 경우)국내 산업이 외국 기업에 종속된다' '기업들은 이윤만 추구하기 때문에 서비스 질이 낮아진다' 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반발한답니다.

이에 대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업무를 맡고 있는 기획예산처 박종구 단장은 "민간 기업이 하지 않겠다고 하면 모를까, 일단 산업이 발전해 민간 기업도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면 과감하게 민영화를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 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효준 기자

◇ 도움말 주신 분〓자유기업원 최승노 실장, 한국경제연구원 이주선 실장, 기획예산처 박종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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