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자 협력 해야 권력창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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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혁명’에 참여한 뒤 노무현 탄핵 역풍이 거셌던 2004년 4월 총선으로 정계 은퇴하기까지 JP(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역정은 2인자 권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3월 2일 오후 신당동 자택을 찾은 전영기 중앙SUNDAY 편집국장과 대담하고 있다. 뇌졸중에서 일어난 뒤 재활운동을 하고 있는 그는 올여름쯤 골프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섭섭함이 많다고요.
“….”

-1인자와 2인자가 협력하지 않고 권력을 창출할 수 있나요.
“없지. 그게 상식이야. 그런 상식을 생각한다면 협조하면서 가야지.”

김 전 총리 자택 거실에 걸려 있는 구한말 서예가 석촌 윤용구의 글. 소이부답은 ‘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근데 두 사람은 협조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걱정스럽지.”

-협조가 안 되면 권력 재창출은 어렵겠군요.
JP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인터뷰 자리에 있던 JP의 김상윤 특보는 “에이, 예비후보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거들었다. 김 특보의 정식 직함은 ‘전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특보’인데 JP가 첫 번째 국무총리를 하던 1971년부터 비서실에서 근무한 40년 그림자 측근이다. YS에 홍인길씨, DJ에 권노갑씨 같은 ‘정치 특무상사’ 역할을 김 특보가 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의 나이도 어느덧 74세다.
JP가 다시 말을 이었다. “허허, 좀 시간이 가면 또 보이는 게 있겠지요.”

-박근혜 전 대표는 역대 2인자 권력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란 평가도 있습니다. 과거 여권 2인자였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영향력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분이 그때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도와달라는 얘기를 했어야 했어. 설령 나중에 생각해 보니 곤란합니다, 그런 한이 있더라도 말이야. 내가 도왔으면 이회창이 됐지.”
‘박근혜와 이회창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JP는 대뜸 2002년 대선 기간에 있었던 일을 꺼냈다.

-그땐 이회창 총재가 노무현 여권 후보에 맞서 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을 때였죠.
“나한테 손 내밀려고 당사까지 왔었어. 그런데 누군가가 작용했어.(그래서 당시 이 후보가 JP한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뜻)”

잠시 2002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충청권 표의 향방을 쥐었다고 믿었다. 노무현 진영과 이회창 진영에선 JP를 서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었다. 그런 중에 JP와 이 후보의 골프장 클럽 하우스 회동이 있었다. JP는 자민련을 국회 교섭단체로 만들기 위해 교섭단체 기준을 국회의석 20석에서 15석으로 낮춰 달라고 이 후보에게 요청했다(자민련 당시 의석은 17석). JP는 그 대가로 이 후보 지지선언을 하겠노라고 제안했다. 그때 분위기가 상당히 좋아 두 사람 간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동 뒤 이 후보가 당 선거대책위 사람들과 협의한 뒤 “JP와는 30초도 안 만났다”고 기자들에게 얘기하는 바람에 둘의 관계는 깨졌다.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선거 일주일쯤 전 이회창 후보의 부친이 별세해 JP가 문상을 갔는데 이 후보는 청구동으로 답방을 하지 않았다. 당시 JP 측 관계자는 “이회창 후보 측이 답방을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JP는 이 후보를 지지할 수 없었고, 이 후보는 대선에서 낙선했다”고 주장했다.

-그때 작용했던 누군가가 누굽니까.
“그런 사람이 있어요. 지금도 박근혜 대표 주변에 있어. 근혜 가는데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드만. 내가 보기엔 도움이 안 되는데.”

JP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TV는 어떤 프로를 보십니까.
“YTN, 일본 NHK, 미국 CNN을 많이 봐. 뉴스는 하나도 안 빠지고 보고. 오락프로도 이것저것 보면서 시간 보내지.”

-참 휘호는 어떻습니까. 왼손으로 되시는지.
“그게 안 돼. 휘호는 올가을 정도는 돼야 가능할 거요.”

-바깥에서 듣던 것보다 건강이 좋으십니다.
“참, 고마운 게. 종합 건강진단을 했는데 (오른쪽 팔을 쳐다보면서) 이것 말고는 하나도 문제가 없대. 다 정상이야. 팔십 넷이나 된 연로한 ×이 혈압이라든지 심장박동이라든지 기능 면에서 나쁜 게 하나도 없어. 건강하대. 허허 빌어먹을….”

-얼굴에 주름이 거의 없으시네요. 84세로 보기 어렵습니다.
“주름은 원래 없었어. 나야 죽는 시간 기다리는 것밖에 없지만 왜 옛날에 백운학이라고 있지.(백운학씨는 1950~60년대 널리 알려진 관상가였다. 신통력으로 유명했는데 그가 세상을 뜬 뒤에도 다른 ‘백운학’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JP가 말한 백씨는 원조 백운학이다.) 혁명 전 일요일 석정선(JP와 육사8기 동기생으로 먼저 예편해 택시운수업을 하다가 JP의 권유를 받고 5·16에 참여했다.)이가 찾아왔기에 ‘야, 너 혁명 같이하자’ 그랬더니 ‘난 못하겠다’고 해. 그래서 ‘알았다. 못해도 좋으니까 일절 말 내지 마라’ 그랬지.”

-그런데 석정선씨가 왜 운수업을 관두고 혁명에 참여하게 됐습니까.
“석정선이 자동차 사업 했는데 무슨 사고가 자꾸 나서 그런지 ‘유명한 관상쟁이한테 물어봐야겠다’며 나를 끌고, 종로5가 제일여관을 빌려 쓰고 있는 어떤 집에 데려 가더만. 관상쟁이가 백운학인지 누군지 난 몰랐지. 난 사복을 입고 갔고. 술집 여자들이 댓 명씩 앉아서 교대 교대 관상을 보고 그러드만. 석정선 차례가 와서 석은 대청마루에 올라가 백운학 앞에 앉았고, 나는 관계없으니까 저쪽 복도에 앉아서 그냥 있었지. 근데 백운학이가 석정선은 안 보고 나를 한참 쳐다 보더니 ‘됩니다!’ 하고 소리를 쳐. 내가 ‘뭐가 되느냐’ 했더니 ‘허~’ 웃는 거라. ‘천하를 뒤집으려는데 됩니다.’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니 여보, 사람 죽이지 말라’고 딱 잡아뗐어. 그래도 계속 ‘허허’ 하고 웃데. 그러곤 앞의 석정선한테 ‘당신, 그거 바퀴 달린 거 팔어. 이번엔 사람 죽여.’ 이러대. 내가 오싹했어. 딱 바퀴라고 하는 거야. 석정선이 운수사업 하는 걸 알았던 거지. 이번엔 쪼그만 사고, 그런 거 아니라 사람 죽인다고, 그런 말을 한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군요.
“혁명하고 내가 백운학을 데려다 저녁을 먹였는데… 이번에도 ‘가만히 보니까 88세는 사시겠어요.’ 그러는 거야.”

-백운학이 그랬단 말입니까.
“그게 88세? 조금 넘기겠어요, 그러드만. 나는 ‘그러면 천수를 다하는 거지’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나네. 그게 진짜라면 4년 남았는데. 하하하. 근데 백운학이는 일찍 죽었어.”

김상윤 특보는 “총재님은 지난겨울 영하 12도 날씨에도 미사리에 가서 운동하고 그랬습니다. 건강이 금세금세 좋아지고 있어요.”
JP가 말을 받았다.

“운동은 뿌울(풀장을 그는 ‘뿌울’이라고 발음했다.)에서 하는 게 제일 좋아요. 8방(면)에서 수압을 주면서 막 걸을 수 있어.”

-그거 얼만큼 하십니까.
“300m 하지. 하, 1년이 지났는데 어제 같아요. 쓰러진 게.”

김 전 총리 자택 거실에 걸려 있는 구한말 서예가 석촌 윤용구의 글. 소이부답은 ‘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전날 소주를 섞어 드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정종만 하면 좋았을 텐데.
“그 전날인가에 부여 사람 32명이 저녁 산다고 오라고 해서 갔더니 독한 술만 갖다놨데. 양주를. 한 잔씩 다 주기에 다 받아 먹었어.”
김상윤 특보는 “나중에 술이 떨어져 소주도 가져오고 맥주도 가져오고 그랬답디다”고 덧붙였다.

-좋아하시는 운동(골프) 한번 나가셔야죠.
“한번 칠까. 은화삼은 좀 어렵고, 뉴코리아도 그런 편이야. 서서울이 제일 나을지 몰라. 여름엔 칠 수 있을 거야. 허허허.”
거실 벽엔 담백한 서체의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이란 편액이 걸려 있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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