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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교수가 정년에 막혀 연구 생명 끝내서야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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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남표 KAIST 총장의 새로운 실험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년사에서 올해부터 유능한 교수의 정년을 5년 연장해 70세로 하기로 밝힌 지 두 달여 만에 5명의 정년 연장을 단행한 것이다.

정년 연장이 된 기계공학과 곽병만·조형석 교수, 생명화학공학과 김상돈·김성철·장호남 교수는 해외에도 이름을 알린 과학자들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과학계에 발자취를 남겼다. 이들은 3일 정년 퇴임식을 할 때만 해도 정년 연장 대상자가 될지 몰랐다고 한다. 명예교수의 대우는 시간강사 수준이다. 대학원생 지도권도, 전용 연구실도 없다.

KAIST가 정년 연장 교수들을 정년 퇴임시킨 뒤 계약직으로 재임용하는 것은 교육공무원법과 사학연금 규정 등을 당장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상돈 교수는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아 흐뭇하다. 앞으로 이 제도가 잘 정착돼 다른 교수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곽병만 교수는 ‘허용 하중 집합’이라는 이론을 창안했다. 기계시스템의 안정성 해석과 설계에 관한 이론이다. 그는 ‘움직이는 부두’라는 새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에 정년 연장 통보를 받았다. 파도가 거센 바다에서 배 곁으로 부두가 다가가 하역을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조형석 교수는 광학과 기계공학을 결합한 광기전공학을 개척했다. 이동 용접로봇과 검사시스템, 원자로 검사용 로봇 등을 개발했다. 김상돈 교수는 석탄액화 공정반응기, 원유 정제공정의 탈황반응기 등 다양한 화학공정에 적용 가능한 ‘삼상유동층의 열 전달 모델’ 분야의 국제 권위다. 장호남 교수는 독일 스프링거가 발행하는 학술지 생물공정바이오시스템공학(BPBSE)이 그의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특집호를 냈을 정도로 해외에 이름을 날리는 과학자다. 김성철 교수는 고분자 분야의 국제적 대가다.

서남표 총장은 “대학의 명성은 유능한 교수가 키워 주는데 65세 정년의 틀에 묶어 연구 생명을 제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제도 도입의 배경을 설명했다. KAIST는 전체 교수 550명의 15%인 80명 정도에게 정년 연장 혜택을 줄 예정이다. 대상자는 이번과 달리 정년 5~10년 전에 미리 심사해 알려줄 계획이다. 경희대도 유능한 교수의 70세 정년 연장 방침을 연초 밝힌 바 있다. 아직 대상자를 선정하지는 않았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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