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정상에 있을 때 내려와도 괜찮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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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01면

김종필(84·사진) 전 총리는 풍운의 정치인이었다. 조인스 인물사전에 ‘주량: 안 마심’이라는 기록이 실린 건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2008년 12월 15일 이후다. 그때부터 김 전 총리는 은둔의 노정객으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정운찬 총리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같은 사람들이 인사차 서울 신당동 자택(과거 정치권에선 ‘청구동’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여전히 고색창연한 기운이 감돈다. 권세 높았을 적 집 앞에 설치돼 출입자를 체크하던 경찰초소는 없어진 지 오래다)을 찾긴 하지만 평소엔 적막하기 그지없다. 김 전 총리는 순천향병원에 3개월간 입원해 있었다. 몸을 일으킨 뒤엔 일주일에 세 번은 풀장 치료, 두 번은 물리 치료를 빡빡하게 받고 있다. 주변에선 놀라운 재활의지라고 말했다. 청소년 시절부터 아령, 평행봉으로 근력을 다지고 검도로 심신을 지키고 골프와 바둑으로 여유를 즐겼던 덕분일까. 그의 정신은 온전하고 육체는 오른쪽 일부를 빼놓곤 팽팽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느릿하면서도 분명한 말투 역시 변함 없었다.

‘김연아 콜리시엄’ 세우자는 김종필 전 총리

김 전 총리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기적을 거실 벽에 걸린 60인치 평면TV와 신문들을 통해 샅샅이 챙겼다. 중앙일보에 ‘김연아 콜리시엄을 건립하자’는 제목의 기고문이 실리기 전날인 3월 2일, 기자는 청구동을 방문했다. 김 전 총리는 김연아와 한국 빙상의 기적을 음미하며 깊은 행복감에 빠져 있었다.

“오늘 아침 가만히 드러누워 생각하니 이제 한국 빙상에 불이 붙었어요. 박세리 후에 여자 골프가 세계를 점화하듯. 얼마든지 더 뛰어난 선수들이 도전을 할 수 있을 겝니다. 지금 얼음판이 있긴 하지만 기준 미달이고, 완벽히 국제대회를 치를 만한 연습장이나 시합장이 있어야겠어. 그래서 대기업이 좀 나서서 빙상의 전당, 김연아 콜리시엄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다 돈이 들어가고 투자가 있어야 일이 이뤄지는 거야.”

-밴쿠버의 우리 선수들 어떻게 보셨습니까.
“김연아, 내가 신동이라고 하는데. 아 무서운 여자야. 하하하. 미울 정도로 아름답고 예뻐요. 아끼는 마음에서 내가 속으로 하는 말인데, 이제 고거 하나 남은 경기 있지만(3월 22일부터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있을 세계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그거 마치고…. 이젠 정상에 있으니까 더 올라갈 곳이 없거든. 잘 못하면 내려갈 수 있어. 내려가서 그만두는 것보다 정상에 있을 때 아무 욕심 없이 거리낌 없이 깨끗하게 내려와도 괜찮을 겨.”

-박수칠 때 떠나라, 그겁니까?
“그런 거지. 사람들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할 때 떠나는 거지. 정치인도 마찬가지지만. 고려대 1학년생이니까 공부를 하든지 후진을 가르치든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아쉬워하면서도 낫다고 평가할 텐데.”

-빙상 경기가 선진국 스포츠라고 합니다만.
“우리가 선진국이 됐으니까 차지한 거지. 정말 놀랐어. 우리 혈액 속에 그런 포텐셜이 있어, 포텐셜이. 그걸 연아가 발휘해 준 거야. 내가 김연아의 실력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좋은 일이 늘 그렇게 두 번 세 번 있는 게 아니거든. (다음 올림픽 때) 혹시 2등 한다든지 자빠진다든지 하면 이미지가 삭~. 허허, 그런 위험 있거든.”

-정치 얘기 좀 여쭤 보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같은 사람은 보수정권이 10년은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그게 그렇게 갈 게요. 엠비(MB·이명박) 대통령에 달려 있는데 10년은 계속될 거야. 다음에 한 사람이면 벌써 10년인데. 한 사람 가지곤 부족하지.”

-통일 대비 때문에 그렇습니까.
“통일은 아직 멀었어. 갑자기 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직도 희망이고. 다 죽게 된 놈이…근데 그런 놈이 오래갈 수 있어.”

-정부·여당 일각에선 세종시 문제를 국민투표로 정리하자는 말도 나옵니다만.
“글쎄, 그건 좀 걱정스럽데.”

-세종시 문제로 집권세력도 분열돼 있습니다.
“어허~저. 내가 보기에 엠비가 근혜, 거기 설득하기 어려울 거야. (근혜가) 섭섭함이 많아요.”

김 전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엠비’, 4촌 처제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근혜’라고 호칭했다. 편안한 사적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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