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이지만 대놓고 반대하기엔 … 학교 무료급식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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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라며 “경제하는 사람으로서 무상급식 확대 주장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예산의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삼는 재무 관료의 시각에서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에게 공짜 식사를 주자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의 무대에선 사정이 다르다. 민주노동당 단골 레퍼토리쯤으로 치부되던 무상급식이 요즘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에서도 진지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조짐마저 보인다. 한나라당의 다수 의견은 윤 장관과 비슷하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3일 라디오 연설에서 “충분히 급식비를 낼 여유가 있는 아이들에게 공짜 점심을 주는 것보다 더 급한 건 서민을 위한 보육예산을 늘리고 교육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지난 1월 “전면 무상급식은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경선을 준비 중인 원희룡 의원은 “서울시는 재정자립도가 높아 초등학교의 경우 전면 무상급식 실시가 가능하다”고 차별화에 나섰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니만큼 수업료를 모두 면제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 시각으로 무상급식을 다루자는 얘기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서울에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할 경우 올해 기준으로 1900억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반면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하는 다른 경쟁자들은 신중한 자세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 측근은 “이미 서울시는 무상급식 예산으로 연간 1100억원을 쓰고 있다”며 “무상급식 전면 도입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사회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의원도 “장기적으로는 전면 도입이 맞지만 당장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는 저소득층 교육지원 사업에 맞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소장파들 사이에선 ‘무상급식 반대(여) vs 찬성(야)’의 대결구도는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 때 어느 주장이 인기를 끌지는 뻔하기 때문이다.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은 “무상급식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할 이유가 없다. 재원이 되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자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18일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지방선거의 최우선 교육공약으로 홍보하는 중이다. 김진표·이종걸 의원 등 당내 경기지사 후보들도 전면 무상급식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데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세균 대표는 “정부가 민생예산을 빼내 4대 강에 쏟아붓는 돈이 무려 22조2000억원인데 아이들 급식에 쓸 돈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도 서울시장 경선 후보인 김성순 의원은 “전면적 무상급식은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하·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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