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소방관 6인 안타까운 사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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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근무지까지 옮기더니…. 네가 먼저 가면 어떡하니, 철홍아. "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동 강북삼성병원 영안실. 홍제동 주택 화재 현장에서 숨진 6명의 소방관 중 김철홍(35.서울 응암동)소방교의 형 창홍(44).재홍(40)씨와 여동생 옥경(34)씨의 오열이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뇌출혈로 쓰러져 이 병원에 석달 동안 입원했던 어머니 김순례(74.전남 장성)씨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부소방서 홍제파출소 근무를 자원했던 金씨였다. 일선인 파출소에 근무해야 한달에 40만원씩 수당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5남2녀 중 막내 아들인 金씨는 노모를 돌보기 위해 응암동 15평 연립주택에 전세로 혼자 살며 결혼까지 미뤄왔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도 1년에 절반 정도는 金씨 집에 올라와 머물렀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어머니의 지병인 천식이 악화되자 자진해 자신의 집으로 모시기도 했다. 모친이 퇴원하고 고향집으로 내려가게 되자 "돈을 모아 4월에 꼭 다시 어머니를 모셔오겠다" 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아들이었다.

○…이번 화재는 신혼의 꿈에 젖은 한 예비부부도 갈라 놓았다. 박준우(31)소방사의 약혼녀 J씨(31.보험회사 영업팀장)는 "이번 주에 혼인신고를 하고 새로 집을 마련해 이사갈 계획이었는데…" 라며 통곡했다.

J씨가 朴씨를 만난 것은 지난해 10월. 소방서에서 영업활동을 하던 J씨를 눈여겨 본 동료 직원이 朴씨를 소개했다.

평소 무뚝뚝한 朴씨였으나 J씨에게만은 한없이 자상했다. 지난해 말 서로 반지만 교환하고 조촐하게 약혼식까지 치렀다. J씨의 친오빠가 결혼을 하지 않아 결혼식은 미뤘다.

J씨는 "준우씨가 영화 '리베라메' 를 보고 '나도 화재 현장에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있다' 고 말했다" 며 "어제 밤에 '걱정마라, 내가 늘 곁에서 지켜줄게' 라며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까지 남겼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라며 눈물을 훔쳤다.

○…서부소방서 구조 부대장으로 일하다 숨진 김기석(42.경기도 고양시 일산구)씨. 38세 때인 1995년 "봉사하며 살고싶다" 며 소방대원에 지원한 '늦깎이 소방대원' 이었다.

부인 조복수(趙福壽.40)씨는 "남편이 평소에도 '항상 위험을 각오하고 있으며 죽더라도 의롭게 죽겠다' 고 말했다" 고 울먹였다.

그는 아버지를 15세에 여의고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17세 때 해군에 자원 입대했다. 군 복무를 하며 야간 고교를 졸업하고 85년 원광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소방대에 지원하기 전에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5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지난해 진급시험에서도 1등을 하는 등 늘 모범을 보여왔다. 지난해 9월 구조대 반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 용감한 소방관으로 '119 구급대-녹번파출소' 라는 TV프로에까지 소개됐던 장석찬(34)씨는 이날 목숨을 잃기 전까지 동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던 소방대원이었다. 서부소방서 진압대원 반장으로 일하다 희생된 박동규(46)씨는 18년째 소방관 생활을 해온 베테랑이다. 현장구조 경력만 4천5백여회다.

숨진 박상옥(32)소방교는 98년 결혼한 부인 김신옥(28)씨에게 하루에도 10차례씩 전화하던 자상한 남편이었다. 부인 金씨는 "오늘 아침 9시까지 친정으로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홍주연.조도연.홍주희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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