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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종교란 이름의 야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종교는 문화를 꽃피우지만 한편으로 문화를 파괴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조상(彫像)들은 코가 온전한 것이 없다. 기독교도들이 이교(異敎)의 상징인 이집트 조상들의 숨구멍을 막기 위해 코를 깨뜨린 것이다.

현재 로마에 남은 기독교 건축물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교도인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유물.유적들을 녹이거나 부숴 얻은 자재로 만든 것들이다.

20년 넘게 내전이 계속 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불교 문화재들이 대량 파괴되고 있다. 국토의 95%를 장악한 이슬람 원리주의세력 탈레반이 '이교 문화재 숙청' 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는 최근 포고문을 통해 불상은 이슬람교에 대한 모독이므로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고대 동서문화 교류의 십자로였던 아프가니스탄은 일찍이 불교가 융성했던 곳으로 간다라미술의 발상지다. 바미얀계곡 석굴군(群)의 불상.불화(佛畵), 수도 카불 국립박물관의 불상 컬렉션은 세계적 보물들이다.

특히 높이 53m의 바미얀 석불은 세계 최대의 불상이다. 9세기께 이슬람교가 전해져 불교는 쇠퇴했지만 불교 유물.유적은 비교적 잘 보존돼 왔다. 이교 문화재라도 신앙의 대상이 아니면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등장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촌에 설립된 이슬람신학교 출신들이 주축인 탈레반은 1994년부터 활동을 시작, 그후 맹렬한 기세로 세력을 확장해 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반(反)탈레반 진영은 92년 나지불라 정권을 타도했던 무자히딘(이슬람전사)의 양대 세력인 이슬람협회와 이슬람당이 그동안의 대립을 청산하고 공동전선을 결성해 대항하고 있으나 크게 열세다.

탈레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이슬람국가 건설이다. 이슬람교가 아닌 모든 종교를 배척한다. TV.영화.음악 등 '천박한' 문화를 금지하고, 범죄를 척결하기 위해 공개처형과 수족절단 등 전통적인 이슬람법을 도입했다. 또 여성을 철저히 차별해 여성은 항상 차도르를 써 얼굴을 가려야 한다. 여성은 학교.직장에 다닐 수 없으며, 심지어 병원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 전세계 아편의 75%를 생산하는 나라, 이슬람 과격세력을 옹호하는 국제테러의 온상으로 지목받기 때문이다.

특히 98년 미국대사관 동시 폭탄테러사건 주모자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함으로써 99년 11월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더해 2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수백만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내전으로 인한 난민 3백만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일부에선 탈레반의 이번 행동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데 대한 반발로 보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불상 파괴는 야만적 반달리즘이다. 불상 파괴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더욱 고립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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