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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대우차 불매운동 합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억장이 무너지기는 저도 마찬가지지만 이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뭡니까. "

파리에 도착한 대우 김우중(金宇中)전회장 체포결사대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중부 샤토루 대우자동차 대리점 책임자 뒤콩제는 전화를 건 기자에게 봇물 터지듯 하소연을 쏟아냈다.

파업의 천국, 노조의 나라라는 프랑스 사람의 질문치곤 이례적었다.

그래서 "그게 무슨 소리냐" 고 반문했더니 그는 "솔직히 프랑스인들에겐 대우 노조원들의 행동이 배반한 보스를 처단하려고 나선 조직원들처럼 섬뜩한 공포감을 준다" 고 항변했다.

"부실경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근로자들의 안타까운 몸짓이 아니겠느냐" 는 기자의 설명에 뒤콩제는 "그런 심정을 알지만 그래도 대우 체포조의 행동은 해외에서 자사제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과 같다" 고 불만을 표시했다.

뒤콩제는 金전회장의 체포 결사대가 파리에 도착한 23일 이후 레조 2대, 라노스 1대 등 3대가 계약 취소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우자동차 현지법인은 샤토루뿐 아니라 프랑스 전역의 대리점들로부터 계약 취소 항의전화를 받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대우자동차는 프랑스에서 지난해 1, 2월 두달간 1천6백70대를 팔았으나 올해는 판매실적이 그 절반에도 못미치는 6백69대다. 채권단과의 이견으로 국내 선적이 늦어져 주문을 받고도 차량을 인도하지 못한 물량도 2월 말 현재 7백여대다.

대우 근로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 가서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벌이는 것을 프랑스인들조차 생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아야겠다.

대우라는 한 기업차원을 넘어 한국기업과 상품 전체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프랑스 언론들은 체포대가 도착한 뒤부터 한국의 뿌리깊은 정경유착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어떤 신문은 '한국 재벌은 실패와 동의어' 라는 선정적 제목의 기사도 실었다.

파리의 한 상사 주재원은 "이미지가 상품인데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 물건 팔기 힘들게 됐다" 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훈범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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