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팔면 한국·필리핀 모두에 이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마크 코주앙코 필리핀 대통령 특사는 2일 “한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도록 정부에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북한에 보내려던 경수로형 원자로 부품과 기자재를 필리핀에 통째로 팔면 한국과 필리핀 모두에 이익이다.”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한한 마크 코주앙코 필리핀 하원 의원은 2일 밤 서울 롯데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은 비싸게 팔 수 있어 좋고, 필리핀은 상대적으로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필리핀 대선이 코앞이어서 현 정부가 구매 결정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니 입찰 일정을 좀 미뤄달라는 게 그가 전달한 아로요 대통령 친서의 내용이다.

필리핀 최대 맥주회사인 산미구엘 최고경영자의 아들인 그는 지역구인 팡가시난주에 원전을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필리핀에 원전이 필요한가.

“필리핀은 수도 마닐라도 하루 두 시간 단전을 할 정도로 전기 사정이 나쁘다. 루손섬에만 약 3000㎿ 정도의 발전소가 필요하다. 필리핀에는 석탄이 많지만 탄소세를 도입하면 소용이 없어진다. 우리는 ‘싸고, 믿을 수 있고, 안전한’ 발전소가 필요하다.”

-새로 지으면 될 텐데 왜 짓다 만 구형 모델 부품을 사가려는 것인가.

“세계적으로 원전 붐이 일면서 인력과 기자재가 공급 부족 상태다. 가격도 뛰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원전은 특별한 케이스다. 만약 우리가 반제품을 구할 수 있다면 비용은 물론이고 공기도 확 줄일 수 있다.”

-KEDO 부품 어떤 것을 사려고 하나

“입찰 공고된 41개 품목 전부다. 우리에게 팔면 제값을 받을 수 있는데 이걸 쪼개서 고철 값에 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 우리가 부품을 사가면 결국 공사는 한국전력공사 컨소시엄이 맡게 된다.”

-원전 지을 돈은 있나.

“필리핀의 전기요금은 ㎾/h당 140페소(약 350원)로 한국의 네 배가 넘는다. 단순 계산을 하면 4년이면 건설비용이 빠진다. 이미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5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태다. 최신형 원전 두 기를 지을 수 있는 돈이다.”

-대선에서 여당이 패하면 원전 건설 자체가 백지화되지 않을까.

“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우리 주에 이 제안을 했을 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회의원들도 지지 성명을 냈고, 차기 후보 가운데 아키노·고든·에스트라다·빌라 등도 지원을 약속했다. 6월 말 새 정부가 출범하면 곧바로 추진할 것이다.”

-너무 늦게 왔고, 공식 절차도 밟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한전이 입찰한다는 사실을 2월에야 알았다. 지난주 대통령 재가를 받아 지난달 28일 한국에 왔다. 우리 대사관에 친서 전달을 요청했더니, 대통령 만나는 데만 석 달 걸린다고 하더라. 그러면 입찰이 끝나버리기 때문에 직접 전달할 길을 찾은 것이다. 귀국하면 한·필리핀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도록 정부에 요청하겠다.”

글=최현철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