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이프 온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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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랑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헤르만 헤세)

사랑, 그것은 가장 로맨틱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단어다. 29일 개봉하는 '이프 온리'는 이런 사랑의 속성을 잘 그려낸 영화다. 영화는 뻔한 멜로 드라마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사랑에 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사랑하는 방식은 다를 지 모르지만 이안(폴 니콜스)과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는 서로를 끔찍히 사랑하는 젊은 연인이다.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듯 잘 나가는 비즈니스맨 이안은 사랑보다 일이 늘 우선이고, 런던에 유학온 미국 출신의 음악도 사만다는 이런 이안이 늘 섭섭하다.

각자 투자설명회와 졸업연주회가 있는 중요한 날. 사만다는 이안이 중요한 자료를 두고 간 사실을 알고 설명회 장소로 달려갈만큼 열정적이지만, 이안은 그날이 사만다의 졸업연주회가 열리는 날인 것조차 잊고 있을 정도다. 이안은 연주회장에 가려고 탄 택시의 기사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감사하고 계산없이 사랑하라"는 충고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사만다와 마주하고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좀더 버텨보기로 했다"고 내뱉어 말다툼만 하고 만다. 식당에서 뛰쳐나와 혼자 택시를 탄 사만다는 이안이 보는 앞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이럴 땐 아마 누구라도 "하루만, 단 하루만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고 빌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하루가 주어진다. 뒤늦게 사랑을 깨달은 이안은 어떻게 해서든 정해진 운명을 피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평소 사만다가 해보고 싶어하던 모든 것을 다 해준 뒤 이안은 사만다에게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작별인사를 고한다.

하룻동안 이안이 베푼 헌신적인 사랑은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스탕달의 명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20대의 사랑은 환상이다. 30대의 사랑은 외도다. 사람은 40세에 와서야 처음으로 참된 사랑을 알게 된다'는 괴테의 말을 생각해보면, 결국 젊은 시절의 사랑이란 그저 환상의 다른 말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에선 있을 수 없을 것 같이 헌신적인 남자와 있을 수 없을 것 같이 멋진 하루를 보내는 그런 환상 말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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