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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해외 재산도피 끝까지 추적해 응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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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스위스 은행의 비밀금고에 대한 금융정보를 통보받을 수 있는 방안을 스위스와 협의 중이다. 내년 1월부터 국내 개인과 기업이 비자금 조성이나 탈세 수단으로 악용해온 스위스 비밀계좌 내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1981년 맺은 양국의 조세조약은 금융정보 교환 조항이 없어 스위스 은행 비밀금고에 내국인의 재산이 은닉돼 있다는 존재를 알더라도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번 협상이 탈세 등 범죄 혐의로 기소된 특정 계좌로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다소 미흡하지만 불법 국부(國富) 유출을 차단하는 진일보한 방향이라고 본다.

스위스 은행은 철저한 금융비밀주의를 고집함으로써 전 세계 부유층과 부패 정치인이 몰래 축적한 검은돈의 은신처가 돼 왔다. 그동안 국내에선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일부 국내 인사들이 스위스 은행에 거액의 재산을 숨겨 놓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한 대형 비리사건이 터지면 수사과정에서 어김없이 비밀계좌 설(說)도 떠돌았다. 범죄와 탈세에 연루된 뭉칫돈의 흐름을 쫓던 수사기관이 비밀계좌 정보에 접근할 수 없어 벽에 부딪혀 왔던 게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스위스를 비롯해 유럽·카리브해·아시아·중남미 등 전 세계적으로 40여 개의 조세 피난처에 5조~7조 달러의 의심스러운 자금이 유입돼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스위스 외에 버뮤다·사모아·바하마 등 6개 조세 피난처와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이미 체결해놓은 상태다. 최근 대검찰청이 국제자금추적지원반을 신설하고, 국세청은 역외(域外) 탈세추적 전담센터를 통해 밀반출된 해외 재산을 되찾는 데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다수 일반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일부 부유층이나 권력층의 해외 재산 빼돌리기는 끝까지 추적해 응징하는 게 마땅하다. 정부는 리히텐슈타인·케이맨 제도 등 나머지 조세 피난처들과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추가로 맺어 불법 재산은 해외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대형 금융비리 사건에서 해외 비밀계좌를 빌미로 흐지부지 마무리하던 수사관행도 사라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