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나도 일하고 싶다] 4. 굴러오는 일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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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일자리를 찾는 주부들은 '결혼' '남편' '육아' 란 단어만 떠올리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하소연한다.

'내 일' 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통과의례로 생각한다면 이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재충전의 호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엄마와 함께 입는 아이 옷' 이란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성공한 문신원(38)주부가 그 대표적인 경우.

"제가 두 아이(11, 5세)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일하는 엄마의 부족함을 메우려고 한 일이 사업아이템으로 연결된 것이죠. "

문씨는 패션디자이너란 전문인이지만 결혼 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다가 남편과 함께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지만 '오모소' 란 브랜드를 선보이기 전까지는 10년 동안 남의 옷만 만들어 대는, 일명 프로모션 기획일을 도맡아 왔다. 바쁜 부모를 둔 두 아이는 자연 시부모 손에서 자랐고, 문씨는 항상 이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휴일이면 가끔 자신의 옷과 아이들 옷을 똑같이 만들어 입고 외출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상당히 부러워하며 따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도 들어와 문씨 부부는 내친 김에 점포를 내기 시작해 지금은 유명백화점에도 입점, 아동복 매출부문 수위를 다투고 있다.

여성창업전문사이트인 사비즈(http://www.sabiz.co.kr)의 김희정(36)사장도 주부.

김사장은 "결혼생활을 사업과 연관시킨다고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며 "주부 시각에서 주변을 다시 살펴보면 자신의 새로운 관심사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고 말했다.

돌이 갓 지난 민석(13개월)이와 지혜(26개월)의 엄마인 김준희(30.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두 아이의 육아 기간을 알차게 이용하려고 무척 애를 쓰는 주부다.

"지혜를 낳기 바로 전에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연년생으로 민석이까지 낳고 보건소에 갔는데 아이 생일이 언제냐는 질문에 답을 못해 보건소 안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어요. "

김씨는 이 때 큰 자극을 받았다. 민석이의 백일이 지나면서 부업거리로 모니터 일을 시작했고,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인터넷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각종 정보도 모았다.

결혼 전 하던 일을 놓지 않으려고 영어 공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덕분에 얼마 전엔 한국관광공사의 일일 통역안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김씨는 "일 때문에 두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맡기고 나올 때는 매번 가슴이 무척 아프다" 며 "그렇다고 무작정 손을 놓고 있다간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 뻔하지 않느냐" 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자의든 타의든 육아로 인해 일을 잠시 쉴 경우엔 이를 '쉬는 시간' 이 아닌 '준비하는 시간' 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인터넷 채용정보회사 인크루트의 강명수(40)이사는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 사회의 변화를 놓치거나 일의 감각을 잃기 쉽다" 며 "일에 복귀해야 한다는 자세로 꾸준히 자신을 연마할 것" 을 주문했다.

물론 자신의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아이 기르기를 소홀히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덕분에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면 사회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 남자들과 달리 부양 책임에 대한 부담이 덜하므로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어학공부 등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할 수도 있다.

강이사는 남편에 대한 외조도 '뒷바라지 상대' 란 부정적 시각보다 취업.창업 벽을 넘는 데 필요한 '지원군' 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그는 "가사분담에 대해 남편의 이해나 도움 없인 주부들이 제대로 일할 수 없다" 며 "남편을 설득해 도움을 얻는 것이 일을 원하는 주부들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일" 이라고 강조했다.

가사.육아 등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네 주부들. 게다가 주부 재취업에 불합리한 점이 많은 국내 노동시장의 현실.

그러나 신세 타령만 하고 있다고 원하는 일이 굴러오진 않는다.

'노력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몸으로 때우는 허드렛일밖에 돌아오지 않는다' 고 전문가들과 일자리 찾기에 성공한 주부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 주부! 나도 일하고 싶다 시리즈

(http://www.joins.com/cgi-bin/sl.cgi?seriescode=769&kind=sl)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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