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이후 손님 뚝 끊겼어요” 모델하우스엔 빈 슬리퍼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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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2008년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의 아파트를 분양받은 김모(52·용인시 신봉동)씨는 고민이 크다. 새 아파트 입주를 위해 살던 집을 지난해 말 내놨으나 팔릴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5월 입주를 앞두고 시세보다 3.3㎡당 100만원 싸게 내놨는데 문의가 전혀 없다”며 “입주할 아파트도 분양가보다 싸게 매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수도권 주택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분양 시장과 기존 주택 시장 모두 수요자가 끊겼다.

양도세 한시 감면 조치가 지난달 11일 끝난 뒤 새 아파트 분양 시장에는 수요자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휴일인 1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손님은 한 명도 없고 고객용 슬리퍼만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함종선 기자]

◆손님 발걸음 끊긴 모델하우스=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 지난달 초에 찾았던 모델하우스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분위기가 딴판이다. 방문객으로 북적이던 모델하우스 안에 적막이 흐른다. 수십 명의 분양상담사 중 2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설 이후 손님이 끊긴 것은 물론 이전에 가계약했던 수요자들의 취소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신규 아파트 분양 시장은 개점 휴업 상태다. 지난달 11일로 양도소득세 한시 감면이 끝났기 때문에 투자 수요가 사라질 것이란 예상은 있었지만 현장의 냉기는 예상보다 훨씬 싸늘하다. D건설사 마케팅팀장은 “지난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양도세 추가 감면 검토 발언 이후 손님이 없다”고 전했다. 기업은행 김일수 부동산팀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수차례 양도세 한시 감면을 시행했던 학습효과 때문에 수요자들이 추가 감면을 기대하면서 관망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입주를 앞둔 미분양 현장 분위기는 더 나쁘다. 5월 입주하는 용인시 성복동의 G아파트는 지금쯤 분양권이 활발하게 거래될 시점이다. 그러나 분양가 이하에 매물이 나와도 거래가 안 된다. 성복동 최모 중개사는 “155㎡형의 경우 분양가에 옵션 비용 등 8억원 정도가 원가로 들어갔는데 7억5000만원에 나온 매물도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입주 물량은 기존 아파트 매매 시장에 큰 부담을 준다. 새 아파트 입주 잔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아파트를 내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1만3000여 가구가 입주하는 고양시도 사정이 비슷하다. 고양시 덕이동의 김모 공인중개사는 “벌떼분양(수십 명의 텔레마케터를 동원한 무차별 분양)이나 임직원 할당 등으로 계약률은 올랐지만 이런 계약분은 대부분 단기 투자 수요여서 입주 전에 매물을 쏟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새 아파트를 분양하려는 건설사들은 눈치 보기가 심각하다. 이달 중 서울·수도권에서 1만1000여 가구를 내놓기로 한 건설사들은 분양을 미루는 분위기다. 이달 초에는 경기도 안양시에서 코오롱건설이 분양하는 67가구가 전부다.

◆기존 아파트도 거래 끊겨=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강북구 미아뉴타운의 부동산중개업소 밀집 지역. 중개업소 문은 활짝 열려 있으나 업소 안에 손님은 없다. 미아동 서정범 공인중개사는 “올 들어 매매 계약서는 한 건도 못 썼다”며 “전·월세 계약으로 한 달에 100만~150만원이 들어오는데 이는 점포세와 인건비 등 기본적으로 나가는 경비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연초 강세를 보이던 강남권 재건축도 강남구 개포주공 단지와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를 중심으로 시세보다 싼 급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개포 주공 1단지 56㎡형의 경우 1월의 실거래가보다 7000만원이나 낮춘 매물이 나왔는 데도 팔리지 않는다. 서울·수도권에 주택 거래가 줄어든 것은 총부채상환비율(DTI) 확대 실시, 보금자리주택 공급, 경기 침체에 따른 집값 하락 가능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잠실동 박수현 공인중개사는 “소형 아파트를 노리던 신혼부부 등이 보금자리주택에 청약하겠다며 전세로 돌아서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연관 업종까지 덩달아 피해=주택 거래 위축은 실물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경기도 용인시의 C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비싼 임대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석 달이 지나도 입주율이 60%를 밑돌아 매출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9시 인천시 서구 신현동의 K아파트 단지. 지난해 9월 말 입주를 시작했지만 이곳 역시 두 채 중 한 채는 불이 꺼져 있다. 단지 인근의 인테리어 업체 사장은 “입주 시점을 대목으로 보고 점포를 차렸는데 입주율이 낮아 인테리어를 의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게 고민이다. 건설업계는 수도권이라도 대출 규제를 풀어 돈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한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실장은 “지금의 침체는 고분양가를 고집한 건설업체가 자초한 것이지만 건설사 책임으로만 돌려 방치하기에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주택 시장 침체로 전체 실물경기가 나빠진 부산·대구 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양도세 한시 감면 연장, 분양가상한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등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글·사진=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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