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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중국에 90도 머리 숙인 도요타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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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그는 굳은 표정으로 “중국에선 가속페달에만 문제가 발견돼 해당 제품을 모두 리콜했다”며 “불편과 불안을 초래해 중국 소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이날 그는 여러 차례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기술의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인 도요타 창업자 가문의 후손이 중국인들 앞에 사죄한 것이었다.

600여 명의 중국 기자들은 “일본 국내산보다 해외 생산제품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송곳 질문을 퍼부었다. 도요다 사장은 “도요타는 중국 시장을 중시한다”며 “중국 자동차 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하고 1시간 만에 자리를 떴다.

닷새 전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 불려나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던 그가 해외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10월 이후 리콜한 850만 대 중 대다수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 거다. 중국에선 별도로 기자회견을 할 만큼 리콜 차량 대수가 많지도 않았다. 1월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RAV4를 7만5552대 리콜한 정도였다.

그런데도 도요다 사장은 미국에 이어 중국 소비자 앞에 직접 나타나 사과 회견을 자청했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일본 우익들은 “중국에서도 모욕을 당할 수는 없다”며 반대했다.

그런데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월스트리트 저널은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이 된 중국에서 ‘선수 치기’식 사과로 이미지 반전을 노린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360만 대가 판매된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는 전년보다 21% 증가한 70만 대를 팔았다. 올해 80만 대라는 판매목표를 세웠지만 리콜 사태로 달성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판매 부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도요타로선 이미지 변신이 다급해진 것이다.

그동안 “도요다가 미국에서는 사과하고, 중국에는 사과하러 오지 않는다”고 중국 네티즌들은 불만을 토로해 왔다. 리콜 사태를 계기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반일감정이 발화하면 자칫 불매운동으로 비화할 수도 있는, 미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회견은 그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급한 불끄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소비자의 파워, 회사의 수익 앞에선 철옹성 같은 일본 최고기업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구겨졌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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