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수출 2000억불 시대] <메인>수출 사상 첫 2000억달러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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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연간 수출액이 2000억달러를 돌파한 22일 부산 감만부두에서 수출품 선적 작업이 한창이다. 송봉근 기자

올 들어 수출액이 22일로 드디어 2000억달러(약 230조원)를 넘어섰다. 산업자원부는 올해 통관 기준 수출액이 22일 2000억달러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수출 2000억달러'는 50여년 전 최빈국 한국으로선 상상할 수 없던 대기록이다. 1946년 100만달러어치를 수출한 지 58년 만에 이룬 금자탑이다.

무역단체와 산자부는 성대한 기념식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기록에도 불구하고 나라 안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수출이 늘어도 싸늘하게 식은 내수시장은 회복 기운을 찾기 어렵다. 고용 사정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갈등과 파행으로 치닫는 정치권에 수출 2000억달러 달성은 관심 밖이다. 수출 2000억달러라는 대기록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유다.

올 들어 9월까지 우리나라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1%나 늘었다.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과 중국 경제의 급성장,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목의 경쟁력 향상 등이 어우러져 낳은 결과다.

과거 경제성장의 패턴이 유지됐다면 이런 정도의 수출 호조는 시차를 두고 투자와 고용 확대로 이어지고 소비가 활활 살아났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해도 소비나 고용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수출이 내수를 이끄는 과거의 성장 패턴이 깨졌다는 얘기다. 몇 개 품목과 몇 개 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편중현상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른바 수출주도형 성장이 한계를 맞고 있는 것이다.

모건 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은 86년 이후 선진국 성장률을 크게 웃돌며 활력 넘치는 '아시아의 호랑이'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는 반대로 수출에만 의존하는 아시아 성장모델의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경기를 지탱해온 수출마저 고유가가 지속되고 선진국의 내수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증가세가 꺾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차세대 수출동력을 빨리 키워 수출상품의 구조를 바꿀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장전략과 그에 맞는 수출구조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출산과 노령화로 경쟁력이 떨어지기 전에 먹고살 길을 찾자는 얘기다.

기자재를 수출하고 이를 해외에서 조립.시공하는 플랜트 사업처럼 상품.지식.인력을 동시에 수출하는 '복합수출'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기술(IT) 기반을 활용해 낙후한 유통.디자인.전시.비즈니스 서비스 등 서비스업을 발전시키거나 고부가가치 산업인 게임.디지털 콘텐트에 집중하는 것도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수출 2000억달러 달성은 새로운 출발점에 불과하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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