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언론과 권력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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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든 정권은 언론을 장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보다 민주화했다는 정권도 언론을 통제하고 언론의 영향력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군사정권은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언론통제를 하지만,이른바 문민정부나 국민의 정부는 간접적이고 묵시적인 방법으로 언론을 통제하거나 조정하려고 꾀한다.미국적 가치를 옹호하기위해 냉전시대에 만든 허친스위원회의 규범론에도 "자기와 다른 의견을 탄압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뿌리깊은 것이며 아마도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한 대목이 있다.

정치권력의 언론통제는 두 얼굴을 가졌다. 잠재적 통제와 실제적 통제, 직접적 통제와 간접적 통제라는 두 얼굴이다.그래서 "이데올로기가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을 불편하게하는 사실은 뉴스에서 밀려난다"고 말한다.

언론에도 두 얼굴이 있다.힘센 정권을 대할 때와 힘잃은 정권을 대할 때 언론은 태도를 바꾼다.나폴레옹을 대하던 프랑스 언론의 모습도 그랬다.자신이 건설한 유럽제국이 붕괴할 때 나폴레옹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1년 전에는 전유럽이 우리와 함께 진군하고 있었다.오늘은 전유럽이 우리를 향해 진격하고 있구나.”나폴레옹을 향해 진격하는 전유럽의 대열에는 언론도 끼어 있었다.앙드레 모로아가 쓴 프랑스사의‘황제의 유럽정복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권력이 힘을 얻을 때는 그 역이 된다.엘바 섬을 빠져나온 나폴레옹이 그르노블,리용을 지나 파리로 진격하자 신문들의 논조가 접근하는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는 것은 다아는 얘기다.나폴레옹 절대권력과 오늘의 정치권력이 동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 권력이 서슬 시퍼럴 때와 정치 권력이 쇠잔해 권력누수 현상을 보일 때 언론이 태도를 달리 하는 것은 나폴레옹 시대나 오늘이나 같다.김영삼 정권이나 이번 정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그랬다.

언로(言路)는 언론인이 뚫고 나가야하는 길이다.권력자는 언로가 뚫리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우리 언설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언로'의 사상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치문화적 언어로 변모하여 나타났다.조선시대 언로는 어명(御命)과는 반대방향으로,신하나 백성이 임금을 향해 진언하는 길을 말하였던 것이다.

조선조를 통하여 가장 뛰어난 경세가였던 율곡 이이(李珥)는 왕도정치를 실현하는데 언로의 열림과 닫힘이 필수적이라고 여겨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언로의 열리고 막힘에 흥망이 달려 있사옵니다."(言路開塞興亡所係)

율곡은 공론의 소통로인 언로가 열려있는가,막혀있는가 여부에 따라서 일국의 흥망성쇠가 걸리게 된다고 생각했다.오늘의 현실정치에서 이율곡이 4백 몇십년 전에 남긴 말 "언로의 열리고 막힘에 흥망이 달려있사옵니다"를 터득하여 활용한 사람은 야당시절의 김대중총재였다.그는 '언로개색 흥망소계'(言路開塞興亡所係)라는 여덟자 휘호를 언론인들에게 써주었다.

야당을 이끌고 힘겹게 정치투쟁과 민주투쟁을 전개하던 김대중 총재는 언론이 언로를 열어 사실을 바르게 보도하기를 갈망하고 또 갈망하며 이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정권을 잡고 후기에 접어든 그가 '언로개색 흥망소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단히 궁금하다.

한국언론은 두 종류의 관행적 속성을 체질화했다고 본다.그 첫째는 언론이 권력과 '유착'하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는 속성이다.또 하나는'상업주의 무한질주'를 하는 속성이다.두 속성은 우연히 체질화 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한국언론의 나이테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언론과 뉴스원의 관계는 언론의 공적 역할에 맞는 독립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론의 일반칙이다.언론개혁은 시민사회의 의제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현역 언론인들도 언론계와 기자사회는 개혁해야 한다는데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뼈를 깎는 자성과 실천을 통해 추락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안팎의 개혁 요구를 뒷바침하는 것이다.

2001년의 언론개혁에 눈을 돌릴때,상업주의와 시장경쟁이 항상 언론을 부패하게 한다는 흑백논리의 고정관념에서도 벗어나 '투명한 상업주의'라는 새로운 개혁문법을 찾아야 한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안병찬(경원대학 행정대학원장·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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