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세대' 할 일은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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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실버취업 박람회에 21일에 이어 22일에도 많은 구직자들이 몰려 길게 줄을 서서 입장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나이는 드셨지만 일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고,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켜서 아주 좋습니다."

택배업체인 '조이플러스 청개구리퀵'에는 65세 이상 실버(노인) 택배요원 10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은 옷가지 등 소량 물품을 한 백화점에서 다른 백화점으로 운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회사 임석권(46)사장은 "처음엔 노인들의 지하철 탑승이 무료이기 때문에 원가절감 차원에서 고용했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일도 열심히 해 믿고 맡길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에 15명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1~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하이 서울 2004 하반기 실버 취업박람회'에서는 경기 침체에 따른 취업난 속에서도 이 회사처럼 55세 이상 장.노년층의 일손을 찾는 다양한 업종의 기업체가 나왔다.

특히 간병인.경비원 등 과거부터 장.노년층이 주로 맡았던 업종뿐 아니라 지하철 택배.영화 엑스트라.커플매니저 등 생소한 업종에서도 새롭게 이들의 일손을 구하고 있다. 장.노년층의 구직뿐 아니라 구인 열기도 뜨거워진 것이다. 영화 엑스트라 모집업체 쇼스타의 강영웅(26) 팀장은 "최근 시골 지역이나 옛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늘면서 스크린 속에서 노인 엑스트라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며 "일급 3만원 수준이지만 대부분 '펑크'를 내지 않고 착실해 인력관리 면에서 안정적"이라고 분석했다.

결혼중매인 하면 장년 여성 '마담 뚜'나 20~30대 여성 '커플 매니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60대 남성 결혼상담원인 '그랜파 뚜('할아버지 중매인'이라는 뜻의 속어)'가 각광받고 있다. 결혼 상담업체인 '결혼마당'의 경우 50명의 결혼중매인 중 절반이 60대 남성이다.

이 업체는 이번 취업박람회에서 10명의 '그랜파 뚜'를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이 회사 장동수(61)고문은 "'여자는 여자가 알아보고 남자는 남자가 알아본다'는 말처럼 결혼상담원은 남성 장.노년층에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답했다. 택배업계에선 배달을 받는 여성 고객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할아버지.할머니 배달원을 선호하기도 한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정성권(66.동작구 사당동)씨는 "젊은이보다 내가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종이 제법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 이혜경 노인복지팀장은 "최근 들어 노인들에게 적합한 직종이 대거 개발되면서 노인들만을 찾는 업체도 꽤 생겼다"라고 설명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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