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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8.8 강진] 아이티보다 위력 500배 강한데 피해는 수백 분의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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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칠레에서 규모 8.8의 강진이 발생해 산티아고의 고가도로가 붕괴되며 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뒤집혀 있다. [산티아고 로이터=뉴시스]

지난달 27일 칠레에서 발생한 규모 8.8의 강진은 지난 1월 아이티를 강타한 지진(규모 7.0)의 500배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칠레의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칠레 정부는 28일 현재 300여 명이 숨진 걸로 추정했다. 아이티 사망자(23만 명 이상)의 수백 분의 1 수준이다. 한국 교민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칠레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데는 인구 밀집지에서 먼 곳에서 지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진은 칠레 제2 도시 콘셉시온에서 115㎞, 해수면에서 34㎞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반면 아이티 지진은 인구 밀집지인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15㎞, 지표면 밑 13㎞에서 발생해 피해를 키웠다. 지진 강도는 진앙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칠레와 아이티의 지질구조가 같다고 하면 인구 밀집지에 도달했을 때 칠레 지진의 강도는 아이티의 8배 수준으로 줄어든다. 아이티보다 단단한 칠레의 지질도 지진 피해를 줄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지진 피해 규모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국가의 대처능력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삼성방재연구소 이호준 박사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피해가 미미한 반면 동남아에서는 엄청난 재난이 발생했던 건 국가의 대처 능력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진 대처에서 칠레와 아이티는 대조를 보였다. 환태평양조산대에 위치한 칠레는 지진이 자주 발생해 지진 대비에 철저하다. 건물은 지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내진 설계가 의무적이다. 이 덕분에 칠레 지진 피해 현장에는 폭삭 주저앉은 건물이 적었다. 반면 아이티는 지진 대비가 전무했다. 대규모 지진은 250년 전 발생한 이후 없었던 데다 내전과 쿠데타가 잇따라 내진 설계는 사치스러운 일이 됐다. 그나마 있는 건축기준도 공무원들에게 뇌물만 주면 무사통과다. 지진이 발생하자 포르토프랭스는 초토화됐다. 대통령궁이 무너지는 등 정부청사 15개 중 13개가 잿더미가 됐다.

정부 대응도 엇갈렸다. 퇴임을 12일 앞둔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지진 발생 즉시 TV에 나와 국민에게 지진 발생을 알린 뒤 수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피해 상황을 전달했다. 27일에는 동이 트자마자 지진 피해 지역인 마울레를 방문했다. 지진이 강타한 6개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신속한 구조를 지시했다. 칠레 국민도 지진에 차분하게 대응했다. 평소 학교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칠레국립긴급기구’는 소방·의료·구호활동을 통합 지휘하고 있다. 반면 아이티의 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지진이 발생한 뒤 하루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아 숨졌을 거라는 추정을 낳기도 했다. 이후에도 지진 구조활동에 소극적으로 나서 아이티 국민이 “우리에게 정부는 없다”고 할 정도였다. 아이티는 지진으로 TV·라디오 방송국과 무선통신망이 두절돼 혼란이 가중됐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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