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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서 편 아내, 돈 세는 남편...시대의 변화 투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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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08면

1 환전상과 그의 아내(1539), 마리누스 판 라이메르스발(1490∼1546) 작, 판자에 유채, 83 x 97㎝, 프라도 박물관, 마드리드

“나는 돈도 자주 새끼를 치게 한답니다.”(샤일록)
“친구끼리 누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예가 있단 말인가요… 그러니 원수에게 돈을 빌려줬노라고 생각하시지.”(안토니오)
돈이 새끼를 친다…. 즉 돈을 빌려주면 당연히 이자를 받아야 한다는 샤일록과 이자는 원수에게서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토니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사진 2)에 등장하는 이 두 사람 중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이 파멸하게 함으로써 안토니오의 손을 들어줬다. 셰익스피어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과 중세 가톨릭 신학자들이라면 이구동성으로 안토니오의 편을 들어줬을 것이다.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 <2>대부업자를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은 새끼를 낳지만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며 이른바 ‘화폐 불임설’을 주장했다. 화폐 자체는 생산 작용으로 이익을 낳지 않으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얘기다. 또 말이나 집을 빌려줄 때는 그 주인이 말이나 집을 사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용료를 받을 수 있지만, 돈을 빌려줄 때는 불편을 감수하는 게 아니므로-왜냐하면 그 돈은 어차피 여윳돈일 것이기 때문에-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고대 그리스 대철학자의 주장이었다.

2 알 파치노가 샤일록을 연기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2005)’의 한 장면.

이 이론에 시비를 거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돈을 꾼 사람이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이윤을 만들었다면 결국 돈으로 새끼를 낳은 셈이니 그에게서 이자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또 말을 빌려주는 것은 사용료를 받아도 되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사용료를 받으면 안 된다면, 돈을 꾼 사람이 그 돈으로 말을 살 경우에는 어쩔 것인가? 그 경우에는 말을 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리고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 돈으로 말이나 다른 물건을 살 기회를 뒤로 미루는 셈인데, 그것도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고대와 중세에는 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절박하게 돈을 꾸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구약 성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어렵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주게 된다면 그에게 채권자 행세를 하거나 이자를 받지 말라(출애굽기 22:25)”고 여러 번 말하곤 했다. 이를 바탕으로, 8세기 말에는 샤를마뉴 대제가 아예 이자를 금지하는 칙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3 환전상과 그의 아내(1514), 퀜틴 마시스(1466~1530) 작, 판자에 유채, 71 x 68㎝, 루브르 박물관, 파리

그러나 중세 후기로 들어와 상업과 국제무역이 발달하면서 돈을 꾸어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그 빌린 돈으로 ‘새끼를 낳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니 이자를 받는 것이 죄악인가 하는 의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 교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13세기 스콜라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침내 이자를 받아도 되는 몇 가지 예외를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예외란 채권자가 그 돈으로 더 이익이 나는 투자를 할 수 있는데도 돈을 빌려주어 그 이익을 희생했을 때, 그리고 채무자가 만기를 넘겨 연체했을 경우 등등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예외들은 돈을 꾸고 빌려주는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결국은 이자를 현실적으로 용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이자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이 대부업에 종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이 블루오션(?)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그리스도교인들의 텃세로 다른 사업에 종사하기가 쉽지 않았던 유대인이었다. 샤일록도 포함해서 말이다.

16세기에 이르자 상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자금 수요는 자꾸 증가하는데, 돈줄은 대부분 유대인이 틀어쥔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베니스의 상인’은 이런 상황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침내 장 칼뱅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이자가 기본적으로 합법적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전문적인 대부업에 대해서는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이 시기-문화예술 면에서 르네상스의 시대였고, 또한 종교개혁의 시대였던 16세기-는 이자에 대한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이 마구 혼재하는 시기였다.

이런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플랑드르 지방의 화가 퀜틴 마시스(1466~1530)의 그림(사진 3)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환전상(money changer)과 그의 아내’라고도 하고 ‘대부업자(money lender)와 그의 아내’라고도 하는데, 이렇게 두 가지 제목이 있는 이유는 당시에 환전상이 대부업자를 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 남자는 부지런히 각종 금화와 은화, 동전의 무게를 재고 있다. 당시 마시스가 살던 안트베르펜은 국제 상거래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 온 다양한 주화의 가치를 비교해서 교환 비율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림 속 남자 같은 환전상들은 주화 속에 들어있는 금이나 은, 동 등의 함량을 재서 교환 비율을 정했다.

남자의 아내는 성모자가 그려져 있는 기도서를 넘기다가, 남편이 하는 일을 넘겨다보고 있다. 이 그림을 소장한 루브르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지금 세속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뒤쪽 찬장에 있는 불 꺼진 양초는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과 인간이 죽으면 이러한 세속의 물질적인 일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 환전상은 돈과 보석을 저울로 재는 데 여념이 없고 아내도 그 일에 정신이 팔리고 있지만, 그 저울은 나중에 최후의 심판에서 이들의 영혼을 재는 데 쓰일 것이다. 천칭저울은 서양회화에서 전통적으로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지 않는가.

16세기 플랑드르 지방과 북부 네덜란드에서는 이와 비슷한 그림들이 하나의 장르로 유행했다. 마시스보다 한 세대 후의 화가인 마리누스 판 라이메르스발(1490~1546)도 아주 비슷한 구도의 그림을 그렸다(사진 1). 여러 미술사가들은 이 장르가 환전상 겸 대부업자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조롱한 일종의 풍자화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에스파냐의 경제사학자 마누엘 S 레돈도는 마시스나 라이메르스발의 그림에서 환전상과 그의 아내가 특별히 추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반문한다. 사실 풍자화라기에는 너무나 점잖고 보기 좋게 묘사되어 있지 않은가? 레돈도는 이 그림을 풍자화로 보는 것 자체가 미술사가들의 금융업에 대한 반감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그림은 상업과 금융이 발달한 플랑드르 지방에서 당시 활약하던 금융업자의 일상을 다룬 ‘직업화’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어떻게 보면 환전상과 신앙심 깊어 보이는 여인이 부부로서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더 이상 금융업이 그리스도교 교리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다는 변화된 생각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불 꺼진 양초나 저울의 등장은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지 말라는 경고도 겸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그러니 이 ‘환전상과 그의 아내’ 시리즈는 그림 자체나 그림의 해석에서나 금융업에 대한 당시와 현대의 복합적인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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