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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의 무로 바라보기] 선망 대상과 골칫덩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에 다녀온 한 신도가 나에게 여행담을 들려주었다.

그는 내가 바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샌디에이고 해변의 요트 정박장에서 호화 요트를 소유한 미국인과 대화한 내용을 전했다. 사람들이 못 가지면 아주 간절하게 갖고 싶어하고, 막상 가지면 골칫덩이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요트.별장.애인이란다. 그말이 너무도 그럴 듯하다. 세상사람들이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몰랐었던 것 같다. 어떻든 그말은 많은 상념을 일으키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최근에 나는 부산 수영만의 한 요트동호인회가 10여년 전에 FRP로 제작한 요트 한척을 헐값에 구입했다. 그 동호인회가 배를 버리다시피 넘겼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 "배에 무슨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책임자는 "남이 타는 모습을 멋지게 보고 사람들이 배에 가까이 하려고 하지만, 한두번의 경험으로 배를 타는 일이 보는 것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면 배를 멀리하게 된다" 고 대답했다. 그 동호인회가 배를 구입한 이후 매년 10여회만 타면서 관리하느라 고생만 했기 때문에 마침내 배를 골칫덩이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별장 관리는 배 관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을 것 같고, 애인 관리에 대해서는 내가 여기서 공개적으로 말할 처지가 아니다.

또 애인을 가져본 이들은 이심전심으로 너무도 잘 알 것이니 군더더기 말을 붙일 필요가 없으리라.

나에게 있어 없으면 갖고 싶고,가지면 걱정거리가 되는 것은 앞의 저 세가지가 아니다. 중생구제라는 허울 좋은 명분의 포장 속에 나의 속스러운 마음을 숨기면서 남을 제치고 뻔뻔스럽게 잡는 직위이다. 청정생활을 하면서 참선에 전념하는 수행자들의 감각은 아주 예민하다.

멸치 국물로 만든 칼국수 한 그릇만 먹어도 즉각 내 뱃속에 어떤 오물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냄새만 잘 맡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슨 말이든지 한마디만 하면 저 수행자들은 내 생각 전체를 파악한다.

며칠 전 동안거, 즉 겨울 3개월간의 집중 참선공부가 끝나갈 때 나는 선승들에게 "걸망을 짊어지고 오리 숲을 지나가는 뒷모습을 필름에 담아 신문에 실을 수 있게 해도 되겠느냐" 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선방 수행자들은 형상으로 꾸미는 일을 속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외형만 출가자이지 속인과 다를 바 없이 홍보효과를 계산하는 나의 마음을 바로 지적한 것이다.

저 날카로운 눈초리에 내 마음을 들키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가사 장삼과 옷 한벌을 걸망에 지고 다음 수행처를 찾아 떠나면서 행동으로 무소유의 삶을 보여주는 저들이 부럽다.

어떤 선출직, 예를 들면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의 기쁨은 대단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구민을 보살피고 당의 계보와 최고 어른에게 충성심이 한결같다는 것을 보이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면서, 아울러 자기가 본래 품었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요트나 별장이나 애인을 관리하는 것보다도 몇백배는 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이 자기 직책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좋기만 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그 직책을 탐하기 때문일 것 같다.

관리하기 힘들지 않은 것은 없다. 명예. 돈.자식 등 모두 우리를 묶는 족쇄다. 심지어 자유마저도 처리하기 어렵다. 직장이 힘들다고 사퇴하고 놀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놀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다. 얻는 이는 소수이고 못 얻는 이가 더 많다. 저 미국인의 말을 응용해 뇌어보는 것은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견물생심으로 좋아 보이는 것마다 갖고 싶지만 막상 가지면 그것이 오히려 짐이 된다고 말이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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